경제·금융

[동십자각] 악마의 속삭임

유명한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왜 현실과 맞지 않을까. 가장 큰 이유는 가정이 실제와 다르기 때문이다.정치인 및 관료의 행동에 대한 가정도 경제학자들 간에 상당히 다르다. 특히 케인스와 뷰캐넌은 극명하게 다른 시각을 가졌다. 케인스는 정치가와 관료들이 비록 때때로 고집스럽거나 바보스럽게 행동할진 몰라도 대부분 공익을 위해 봉사한다고 믿었다. 반면 뷰캐넌은 비즈니스맨들이 이기적이듯이 정치인과 관료들도 이기적이라고 주장한다. 「케인스의 세상」에서는 정부와 정치인을 믿고 따르는 국민들이 많은 반면 「뷰캐넌의 세상」에서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정부와 정치인을 믿지 못하고 항상 경계한다. 『정부의 공공투자 확대가 경기를 살린다』와 『소비가 미덕이다』가 케인스경제학의 핵심. 그러나 이 이론은 「케인스의 세상」에서는 잘 적용되지만 「뷰캐넌의 세상」에서는 맞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의 최근 경제상황을 보면 이것이 여실히 입증된다. 미국은 투자확대와 소비의 증가로 인해 97개월 연속 호황을 누리고 있다. 미국경제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탄탄한 내수다. 아시아 경제위기로 수출이 감소할 때도 활발한 내수가 수출감소분을 메웠다. 소득증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소비가 늘어나고 있어 이제는 거품이 우려될 정도다. 반면 일본인들은 전통적으로 저축률이 매우 높은 국민이다. 불황이 깊어질수록 저축에 매달린다. 일본정부가 소비를 자극하려고 공공사업을 벌이고 세금을 깎아주는가 하면 심지어 상품권을 나눠주는 등 별짓을 다해도 일본 국민들은 도무지 소비를 하려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민족성의 차이가 근본원인이지만 정치인과 관료에 대한 국민의 인식 차이 때문인 측면도 강하다. 일본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적 이기주의와 관료주의가 더 팽배해 있다.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우리 정부도 케인스 이론에 따라 재정확대를 통해 정부의 역할을 늘리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성공한 정책일까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 우리는 「뷰캐넌의 세상」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이 정부조직개편 과정에서 오히려 덩치를 더 부풀린 것이 이를 여실히 입증한다. 실제로 정부가 실업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공무원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 경기가 서서히 회복되고 있지만 구조조정에 64조원을 투입하고 실업대책에 지난해와 올해 26조원의 돈을 넣는 것과 비교할 때 정책효과 면에서는 기대이하 수준이다. 특히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정부는 악마도 구세주도 아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들은 가끔 악마적이거나 구원적 결과를 초래한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로 유명한 미국의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의 말이다. 지난해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서 「구원의 메시지」로 들렸던 정부·여당의 목소리가 경제회복의 환상과 함께 서서히 「악마의 속삭임」으로 변하는 것은 아닌지 유심히 살펴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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