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신 불편해도 마음은 건강해요"솔직히 별로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대체 무엇을 물어야 한단 말인가.
2000년 11월. 건장한 체격의 한 댄스가수가 오토바이 사고로 쓰러졌다. '하반신 마비'라고 했다. 그로부터 어언 반 년. 그는 차츰 마음을 추스리고 재활의 의지를 붇돋우는 모습이다. 머리 양 옆에 살을 뚫어 고정시켜야 하는 '할로 베스트'도 벗어던졌고 운동 역시 거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여전히, 머리 속은 암전상태였다.
모 방송국 촬영현장에서 만난 강원래(31)는 예나 지금이나 단단해 보였다. 두어 시간이 넘게 진행된 촬영도 단 한번의 휴식 없이 잘 견디는 모습이었다. '나이든 노인만큼의 기력도 없다'는 설명을 잊을 정도로 앉아있는 품새가 변함없이 우뚝하다. 그가 앉은 공간이 휠체어가 아닌 다음에야 '가슴 이하가 마비된 '환자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힘드셨지요?" "아닙니다, 뭘요."
여전히 힘차고 씩씩한, 게다가 유머러스까지 한 그가 답한다. 휠체어에 앉은 모습 역시 남들보다 한 뼘은 크다.
춤. 춤을 추지 않는다면 숨 쉬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고 말해온 건 다름아닌 그였다. 춤을 추며 사춘기적 방황을 씻어냈고 춤으로 삶 전체를 설계해 온 인생이다. 그의 옆에서 대소변 수발까지 도맡아 하고 있는 연인 김 송(27) 역시 춤으로 인해 엮인 인연이었다. 그런 그에게 하필이면 하반신 마비라니.
'낫기를 희망한다'는 말 역시 부질없는 일이요 '100만 장애인을 위해서.'도 쓸데없는 말일 것이었다.
"이젠 아파트 층계로 올라갈 수가 없어요. 층계 옆에 빗판을 대려고 했는데 주민들이 싫어한다며 경비원이 막더군요.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부나 노인분들에게도 더 편한 게 아닌가요"담담히 말하던 그의 목소리가 약간 올라간 것도 같다. 결국 강원래는 내부 공사가 진행중인 새 아파트 입주 기간을 기다려 10월까지 국립재활원에서 재활 훈련을 받을 예정이다. 그로 향한 여러 엇갈린 시선들이 어느 정도 느껴져 침이 말라 왔다.
다만 하나. 오토바이에 대해 묻고 싶었다. 그의 인생 전체를 바꾼 그 존재에 대해 그가 어떤 느낌을 지니고 있을지, 얄궂게 느끼면 어쩌나 싶었지만 솔직히 궁금했다.
"제가 헬멧을 안 썼으면 목 뒤를 다쳤을 거고 그랬으면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처럼 전신 마비가 됐겠지요. 오토바이를 탈 땐 꼭 헬멧을 쓰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여전히 건강한 남자, 그가 들려준 걸작 같은 답변이었다.
김희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