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 올해 대기업 인사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항목이다.
우선 삼성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한 삼성전자의 혁신 DNA를 실적이 부진한 다른 계열사에 이식하는 작업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삼성전자의 경영혁신 전문가 20여명이 막대한 적자를 기록한 삼성엔지니어링으로 이동한 것도 삼성전자 성공 노하우 전파 작업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특히 삼성전자의 재무 관련 인력이 다른 계열사로 옮겨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은 이미 삼성전자의 핵심 경영진을 다른 계열사로 보내 효과를 본 경험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은 삼성전자 출신의 박근희 삼성생명 부회장과 최치훈 삼성카드 사장으로 이들은 삼성전자의 혁신 노하우를 금융 계열사에 이식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제일모직의 소재와 패션 부문을 각각 맡고 있는 박종우 사장과 윤주화 사장도 모두 삼성전자 출신이다. 박 사장은 제일모직으로 옮겨 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원천기술을 가진 노발레드를 인수하는 등 전자소재 부문 경쟁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고 윤 사장은 실적이 부진한 패션 브랜드를 정리하는 등 패션사업 재편을 이끌었다.
현대차그룹 연말 인사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혁신'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품질을 통한 브랜드 혁신을 이뤄달라"고 강조한 데 이어 최근 유럽 현장 경영에서도 "신형 '제네시스'를 투입해 브랜드 혁신을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올 들어 정 회장이 내린 경영 지침에는 혁신이라는 두 글자가 반드시 들어간다. 따라서 연말 인사에서도 혁신의 성과가 평가의 기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일각에서는 인사 키워드인 혁신이 '쇄신'을 의미한다고도 읽고 있다. 최근 수년간의 급성장세가 올 들어 급속히 주춤해지고 각종 실수와 품질 문제가 잦아진 이유는 조직에 긴장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정 회장이 판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 들어 4월에는 현대ㆍ기아차 13개 차종에서 브레이크 스위치 결함이 발견돼 미국에서만 187만대가 리콜됐고 8월에는 현가장치 부식으로 현대차 '쏘타타'와 '그랜저' 24만대를 리콜했다. 최근에는 브레이크 문제로 '제네시스' 수만대가 국내외에서 리콜됐다. '싼타페'는 누수 문제가 발생해 국내에서 무상수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같은 연쇄 품질 문제에 따라 현대차와 기아차는 최근 미국 컨슈머리포트 자동차 신뢰도 평가에서 각각 21위와 16위까지 밀렸다. 이는 전년 대비 4계단과 6계단 하락한 순위다.
최근 이 같은 연쇄적 품질 문제에 따라 권문식 현대ㆍ기아차 연구개발(R&D) 본부장 등 남양연구소 고위임원 세 사람으로부터 사표를 받았지만 여기서 그칠 일이 아니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R&D와 품질 분야에서는 연말 대대적인 교체 태풍이 불 것이라는 예상이 현대차그룹 안팎에 파다한 상태다.
구매 쪽도 마찬가지다. 최근 공정위가 외국계 부품업체가 담합해 현대ㆍ기아차에 비싸게 제품을 납품했다고 보고 조사하고 있다. 이들의 담합이 사실이라면 부품을 비싸게 구매한 현대ㆍ기아차 해당 경영진도 마땅히 책임져야 한다.
판매 쪽에서는 국내 부문에서 쇄신 인사가 확실시된다. 특히 기아차의 경우 올해 국내 실적이 대폭 악화됐을 뿐만 아니라 올해 발표한 신차가 모두 제대로 팔리지 않았다. 국내 영업과 마케팅은 책임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사정이 좀 낫지만 판매 부진의 책임을 묻는 인사는 소폭이나마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