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1년 365일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곳들이 있다.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의 정부서울청사 1층에 자리한 국민안전처 중앙재난안전상황실도 그 가운데 하나다. 땅과 바다·하늘 등 대한민국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각종 사고와 재해 등을 챙기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는 여러 대의 대형 상황 모니터 맨 위편의 길고 가느다란 전광판에는 '침착하게, 極盡(극진)한 마음으로 국민만을 생각하자'는 글귀가 언제나 반복적으로 지나간다. 국민안전처의 초대 수장인 박인용(사진) 장관이 지난해 12월 취임 직후에 직접 지은 문구다. 세월호 사고로 안전 컨트롤타워에 대한 사회적 여망을 품고 탄생한 안전처가 출범한 지 7개월가량이 지났다.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에서 안전 컨트롤타워로서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박 장관을 만나 안전정책의 방향을 들어봤다.
지난 2일 정부서울청사 5층 집무실에서 만난 박 장관은 "국무위원들 중에서 '국민'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부처는 안전처가 유일하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부처의 이름이 주는 막중한 임무와 무게감만큼 극진한 마음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펼쳐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최근 안전처는 다소 곤혹스러운 처지에 있다. 국민들의 높은 기대감 속에 출범해 처음으로 맞은 사회재난이 메르스인데 이렇다 할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기 때문이다. 박 장관은 "(이번 메르스 사태처럼) 초동대처의 주체는 다소 다를 수 있지만 결국 국민의 안전과 관련한 것인 만큼 어떤 질책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며 "모든 것을 다시 살펴 내가 사랑하는 아내와 하나뿐인 딸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정책을 펼쳐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 나타난 안전처와 관련한 문제점은 사태가 종식되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전문인력 확충과 매뉴얼 재조정 등의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박 장관은 "그동안 안전처에 의학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일단 의사 출신 3명을 뽑아 자문위원 형식으로 특수재난실과 기획조조정실 등에 배치했다"며 "아울러 감염병뿐 아니라 테러 등에 대한 대비도 필요한 만큼 테러 관련 전문가 3명도 영입해 TF 형태로 특수재난실에 배치시킨 만큼 앞으로 안전처의 역할과 범위가 한층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처는 출범 이후 국내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보유한 5,303개의 매뉴얼이 형식적이고 중복된 경우도 많다고 판단해 실제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핵심내용과 행동요령 위주의 450개 정도로 대폭 간소화하는 작업을 진행해 조만간 완료할 예정이다. 박 장관은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서도 그동안 위기경보 단계가 지나치게 경직되게 운영됐다는 지적이 있어 앞으로는 보다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새로 탄생한 부처의 초대 수장으로서 조직을 이끌고 있는 것에 대한 애로 사항이 없을 수 없다. 더구나 안전처는 기존의 소방과 해양경찰·일반행정 등이 합쳐진 조직이다. 박 장관은 여기에 장·차관이 군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기술직과 방재 등까지 포함하면 '한 지붕 여섯 가족'이라고 보고 있다.
박 장관은 "새 부품을 가지고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든다면 쉬울지 모르지만 각기 다른 문화와 행정체계를 하나로 만들어나가는 게 쉬울 수는 없다"며 "더구나 가문 논에 비가 온다 해도 곧바로 물이 고일 수 없듯 여러 조직이 합쳐져 이제 갓 만들어진 안전처가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융합과 축적된 시스템 등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해군 대장 출신인 박 장관은 안보와 안전에 대한 나름의 생각도 피력했다. 박 장관은 "19세 때부터 40년간의 군 생활에서는 적을 죽여 안보를 지킨다는 생각을 해왔다면 지금은 국민을 살려 안보를 지키는 것으로 바뀌었다"며 "안전과 안보는 따로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박 장관은 특히 인터뷰 내내 '열정'과 '극진'을 강조했다. 안전처의 수장으로서 안전에 대한 생각을 일종의 '절규'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는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안전처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안전을 향한 같은 열정을 품고 펼쳐가는 것"이라며 "내가 갖고 있는 것 역시 열정, 그 하나"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 장관은 취임 이후 매일 오전8시30분 간밤의 사건·사고는 물론 사회재난·자연재해 등과 관련한 현황·대처 등을 논의하는 '국민안전 일일상황회의'를 시행하고 있다. 아주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거의 매일 직접 회의를 챙기고 있다.
박 장관이 그중에서도 매일 아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챙기는 게 바로 2월 첫선을 보인 '안전신문고 애플리케이션'의 확산 현황이다. 일반인들이 스마트폰에 앱을 다운 받아 설치해 일상생활에서 안전위험 요소를 신고하면 안전처와 관할 지자체 등에서 1주일 이내에 결과를 신고자에게 알려주는 앱이다. 박 장관은 "현재 안전신문고 앱을 다운로드한 게 72만건에 이르고 지금까지 접수된 신고건수가 3만여건에 달한다"며 "우리 국민들 대다수가 이 앱을 깔아 생활주변의 안전위험 요소 신고에 나선다면 신문고가 안전을 지키는 큰 축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 장관은 국민들의 안전의식 제고를 위해 범국민 안전교육 진흥을 뒷받침하고 국민의 안전역량을 높이기 위한 '국민 안전교육진흥 기본법' 제정도 추진 중이다. 그는 "제도와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결국 안전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안전문화에 대한 의식을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안전처는 이를 위해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재난사고 시 신속히 현장대응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부처의 재난유형별·단계별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했다. 또 전국 어디에서나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특수구조대 확대와 현장지휘체계 일원화에도 힘썼다.
박 장관은 "안전처라는 중앙정부 부처 못지않게 대형재난의 초기대응은 지자체의 역할도 크다는 점에서 전담조직 설치가 중요하다"며 "경기도 등 10개 시도는 안전전담조직 신설을 위한 조례개정을 마쳤고 현재 5개 시도는 이달 말이나 다음달까지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직 메르스가 종식되지 않았지만 박 장관이 바짝 긴장해 챙기고 있는 또 다른 사안은 태풍과 홍수, 물놀이 사고 예방이다. 중부지방 가뭄에 이어 여름철로 다가서면서 태풍 등에 대한 피해를 줄이는 것도 안전처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집중호우나 태풍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전국의 2,000여개 야영장에 대해 일일이 안전관리담당을 지정하고 소방관서 등과의 핫라인도 새롭게 구축했다"며 "다음주부터는 물놀이 사고 위험이 높은 지역을 대상으로 안전처 직원의 지역별 전담관리제도도 실시해 인명피해가 최소화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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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이용택 사회부장(부국장) ytlee@sed.co.kr
사진=이호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