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수사현실에 눈감은 법원

“증거 인멸, 도주 우려가 없다.” 법원이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밝힌 이유다. 과거와 달리 피의자 인권이 부각되면서 ‘불구속 수사’ 원칙이 중요해지고 있다. “죄질이 가벼운데도 무조건 구속해 조사하겠다는 검찰의 구태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법원의 주장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영장 판단은 판사 고유의 권한으로 검찰이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다며 불만을 드러내는 법원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법원이 영장 심사를 하면서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바로 우리의 수사 현실이다. 유씨는 엘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과 마이클 톰슨 법률담당 이사와 함께 지난 2003년 11월 거짓 감자계획을 주도적으로 발표, 외환은행과 합병을 앞둔 외환카드 주가를 떨어뜨려 주주들에게 최소 226억원의 피해를 끼친 혐의를 받고 있다. 법원은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기 때문에 굳이 구속할 필요가 없다며 유씨 영장을 5월 이후 4차례나 기각했다. 법리만으로 따지면 딴지를 걸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주가 조작 같은 지능범죄의 경우 불구속 수사시 관련자들끼리 한데 모여 ‘숙의’를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지적이다. 실제 기밀을 유지해가면서 진행해야 할 수사지만, 불구속 수사를 할 경우 다음날 피의자가 준비된 진술로만 일관해 수사가 난항을 겪어온 사례는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법원은 법리에만 집착할 뿐 이 같은 수사 현실에 애써 눈을 감고 있다. 그렇다고 검찰의 구태수사 관행을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다. K 변호사는 최근 기자와 저녁 자리에서 “나도 변호사를 하고 있지만, 동료 변호사 중에는 피의자에게 거짓 진술을 유도하는 일이 빈번한 게 현실이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재주 좋은 검사라도 수사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K 변호사의 고백은 우리의 수사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대목이다. 법원이 영장 심사의 고유 권한을 갖고는 있다지만, 인권이 심대하게 침해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이 같은 수사 현실을 감안, 검찰 수사에 협조가 되는 방향으로 심사를 해줘야 한다.

관련기사



김홍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