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스포츠

기적을 만드는 공포의 외인구단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3~4년 전만 해도 10골 차 이상으로 졌던 팀들에 지금은 승리를 자신할 만큼 성장세가 빠르다. /사진제공=대한아이스하키협회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역사는 채 20년도 안 된다. 지난 1999년 안방(강원)에서 열린 동계아시안게임을 위해 첫발을 내디딘 뒤 지금까지 단 한 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프로·실업팀은 물론 초·중·고·대학팀도 없다. 다른 종목처럼 체육특기생으로 받아주는 대학 역시 없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등록선수는 177명. 초등학생인 유소년 클럽 선수들을 포함해야 이 정도 숫자가 나온다. 이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대표팀은 오로지 아이스하키에 대한 열정만으로 세계선수권(5부리그) 우승(2005·2013년) 등 놀랄 만할 성과를 내왔다. 아이스하키는 15㎏이 넘는 장비를 착용해야 하는 운동이지만 선수들은 “경기 후의 개운함 때문에 아이스하키를 포기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세계랭킹은 전체 38개국 중 24위. 북한은 27위다. 15위 중국을 따라잡는 게 대표팀 숙원이다.


그동안의 대표팀은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다. 여고 교사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영화 연출부, 박사과정 대학원생, 학생군사교육단(ROTC) 사관후보생, 치과위생사로 일하는 탈북 선수까지 면면이 ‘화려’했다. 협회가 여자 대표팀을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2013년부터는 ‘국가대표’가 직업인 선수들이 늘었다. 훈련 시작 시간을 앞당기고 해외 전지훈련을 도입하는 등 아이스하키에 전념해야 하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핀란드·스웨덴으로 전훈을 다녀온 대표팀은 곧 미국 미네소타로 출국, 3월 말 스코틀랜드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위한 마무리 담금질에 들어간다.

관련기사



해외 전훈은 그렇다 쳐도 대표팀이 유일한 팀인데 국내에서는 어떻게 연습경기를 치를까. 2013년 3월부터 1년에 한두 차례씩 태릉·고려대·목동 등에서 여자 아이스하키리그가 운영되고 있다. 말이 리그지 아이스하키를 할 줄 아는 여성들을 전국에서 모은 뒤 대표팀을 섞어 세 팀으로 나눈 후 팀당 8경기 안팎을 치르는 것이다. 북미 유학 중 아이스하키를 배운 고등학생들이 방학 때 이 리그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력이 만만찮아 대표팀으로선 꽤 효과적인 훈련이 된다. 초등학교 4~5학년생, 중국 대표팀 출신 등도 상금 한 푼 없는 리그에 목숨을 건다. 협회 관계자는 “20분씩 3피리어드의 정식 경기를 치를 기회가 주어진다는 자체에 참가자들은 열광한다. 세 팀으로 편을 나눌 때 더 잘하는 선수를 데려가기 위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밝혔다.

여자 대표팀 선수들은 몇 년 전만 해도 남자 선수들이 사용하다 버린 스틱을 가져와 테이프로 감아서 쓰는 일이 흔했다. 그러나 최근 외국인 감독 선임, 라커룸 정비, 장비 지급 등 지원이 체계화하면서 선수들은 신바람을 내고 있다. 2013년 협회 지원으로 캐나다로 유학 간 대표팀 주포 박종아는 이달 아이스하키 명문대로 스카우트됐고 주전 골리(골키퍼) 신소정, 수비수 박예은·김세린도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다. 또 지난해 부임한 새러 머리(캐나다·여자) 감독은 캐나다 남자 대표팀과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감독을 지낸 하키계 거물 앤디 머리의 딸이다. 새러 감독은 매일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1시간씩 조언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일본 여자 대표팀도 캐나다 지도자 선임 뒤 세계랭킹 8위까지 치솟으며 자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양준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