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증시의 상승세가 크게 둔화되고 있다. 시장 상승을 이끌어 왔던 외국인들의 매수세도 약화 조짐이 뚜렷하다. 지난 주 타이완의 경우 외국인들은 2001년 이후 일간 최대 규모의 외국인 순매도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금이 크게 빠져나가고 있다기보다는 선 유입된 자금의 이익실현 욕구가 일단 강한 것 같다. 지난 주 타이완의 외국인 순매도 내역을 살펴보면 매수 규모는 지난 5월 이후 평균치를 유지했지만 매도 규모가 2001년 이후 일간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대규모 순매도 수치가 기록됐다. 매수세가 감소한 것이 아니라 매도가 늘어난 것이다.
실제로 타이완의 시가총액 1위 기업인 TSMC(타이완반도체)에 대한 외국인 매수세는 이미 한달 전부터 약화되기 시작했고, 지난 주말 대규모 매도 역시 UMCㆍTSMC 등 대형 기술주를 중심으로 쏟아졌기 때문에 최근 외국인 순매도는 이러한 선발주에 대한 이익 실현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5월말 이후 외국인 매수 초기 국면에 유입된 자금은 동아시아 시장에서 시가총액 상위 우량주를 중심으로 사들였지만 최근 들어서는 대형 우량주 보다는 해운, 조선, 금융, 일부 내수업종 매수에 치중하면서 선후발 외국인간의 매수종목군과 매도 종목군간의 불일치가 심해지면서 장세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는 측면도 있다. 그만큼 동아시아 시장에서 외국인들의 매수 종목군 역시 `질`이 점차 떨어져 왔다고 볼 수 있고 최근 순매도 전환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간 동아시아 시장에서 선도주 역할을 해왔던 홍콩H주식(홍콩상장 중국기업)과 일본 증시가 단기 추세를 이탈한 점은 이 같은 개별국가들의 선도주들의 약세 현상과도 맥을 같이 한다. 어쨌든 동아시아 시장은 지난 8개월간의 긴 상승 여정에서 벗어나 휴지기로 들어 가는 것 같다.
많은 투자가들이 2002년 1~4월 장세를 기대하기도 한다. 당시 외국인들은 1월초에 순매도로 전환했지만 장세는 4월까지 700대 중반에서 900대 후반까지 200포인트가 추가 상승한 경험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당시 장세를 견인한 것은 투신권과 일반인 자금이었다. 따라서 현재 국내 투자가들이 얼마나 자금을 투입해 장세 반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가 시장의 단기 이슈가 되고 있다.
최근 고객예탁금이 증가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점도 관심이다. 통상 일반인 자금은 장세에 후행한다. 지나간 장세가 매력적이었으면 향후 기대수익률도 높아져 자금이 유입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승률 상위 종목군과 수익률 상위 펀드의 내용을 크게 중시한다. 한마디로 남들이 얼마나 `먹었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상위권 수익률을 기록한 종목이나 펀드가 충분히 많은 가에 초점을 맞춘다.
9ㆍ11테러사태 이후 일반인 자금이 본격 유입되기 시작한 2002년 1월8일까지 종합주가지수는 53% 상승했다. 올해도 3월 저점 대비 약 50% 올랐다. 종합주가지수 상승률은 비슷하다. 하지만 수익률 상위 20위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 차이는 드라마틱할 정도로 차이가 난다. 현재 수익률 상위 20위 펀드의 3월 이후 평균 수익률은 56% 대로 종합주가지수를 따라온 정도다. 하지만 9ㆍ11 이후 2002.1.8일까지 수익률 상위 20위 펀드의 수익률은 무려 84%에 달한다. 상승률 상위 20위 종목군의 평균 상승률 역시 180%와 120%로 크게 차이가 난다. 이같이 수익률 차이가 나는 이유는 외국인들이 그간 장기 소외됐던 구 경제 주식을 대규모로 사들이면서 적지않은 구 경제 주식이 크게 올랐고 펀드의 평균 운용 규모도 낮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2002년 1월부터 4월까지 일반인 자금이 시장에 유입된 상황은 시장을 크게 웃도는 매력적인 투자기회를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가능했으나 현재의 상황은 2002년 초반과 지수상승률은 비슷하지만 당시보다는 매력적이진 않은 것 같다. 더욱이 외국인들이 소외된 종목군을 대규모로 사들이는 국면도 아니다. 펀드의 평균 운용규모도 당시보다 커졌기 때문에 펀드매니저들은 지수를 쫓아가기 바쁘다. 일반인과 국내 기관들의 자금 유입은 2002년 초반보다는 적을 것으로 보이며 외국인들의 순매도 전환과 함께 장세는 당분간 쉬어갈 것 같다.
<이정호 미래에셋증권 투자전략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