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아사태… 「82년과 97년」 비교해보면

◎임직원들 그때처럼 ‘구사’ 한마음/미니밴(KV­Ⅱ) 곧 출하… 「제2 봉고신화」 창조 관심『우리는 기아재건 및 명예회복을 위해 전사원이 일치단결, 경영정상화를 이룩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할 것이다. 직장과 회사의 재건을 위해 82년도 급여인상분과 상여금을 전액 반납한다. 우리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추호의 동요됨이 없이 근무시간을 연장한다.』(82년 3월18일) 『기아는 국민의 기업이자 자동차 전문기업으로서 전문경영인체제가 계승, 발전될 수 있도록 노조원들은 목숨을 걸고 회사를 사수하겠다. 공식적으로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임금 및 상여금 반납 등 나름대로 각오가 돼 있으며, 수출물량의 납기를 맞추기 위해 휴가도 반납할 각오다.』(97년 7월17일) 「역사는 되풀이 될 수 있다.」 기아맨들은 지금 이 말이 진리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82년과 97년.」 15년이란 시공을 초월해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회사가 존립의 위기에 처해있고, 80년대 봉고에 버금가는 90년대 후반의 미니밴(KV­Ⅱ) 출하를 앞두고 있으며, 김선홍 회장 그 핵심에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임직원들이 구사에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번 위기도 극복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구심점, 리더십, 자동차환경, 임직원들의 결속력, 금융권의 태도 등 여러면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 이런 점에서 「80년대 상황」은 기아의 「90년대 위기」와 「기아의 미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80년 8월20일 중화학분야 투자조정 조치는 기아산업(현 기아자동차)에서 승용차 생산권을 포기토록 했다. 5공정권의 강압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곧이어 기아를 동아자동차(현 쌍룡자동차)에 합병한다는 방안을 마련, 강권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가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런 와중에 기아의 대주주이던 김상문씨가 주식을 매각키로 했다는 소문도 퍼졌다. 극심한 판매부진으로 고전하던 기아산업은 44년 설립이래 최대위기를 맞게 됐다. 사실상 모든 사람들은 『기아는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임직원들은 하나로 뭉쳐 정부에 끈질기게 「저항」했다. 전임직원들이 각계에 탄원서를 냈고, 판매확대만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며 1대 더팔기 운동을 자발적으로 전개했다. 당시에도 주거래은행이던 제일은행의 이필선 행장은 기아가 맡겨두었던 주식을 동아에 넘기라는 정부의 압력에 대해 『우리의 오랜 고객인데 담보물을 타인에게 넘긴다는 것은 도의상 있을 수 없다』며 맞섰다. 82년 3월17일 「종업원 궐기」가 나왔다. 『어떠한 경우에도 회사와 더불어 운명을 함께 하겠다』며 「회사사수」에 대한 임직원들의 결연한 의지를 표출했다. 그리고 다음날 절대절명의 위기에 빠져있던 기아회생의 일대전기를 마련한 「전사원결의다짐」이 나오게 된다. ▲상여금 전액반납 ▲원가절감 ▲생산성향상 ▲모범적인 노사협조로 회사재건 완수 등을 다짐했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기아는 「국민기업」이 됐다. 그해 7월24일 정부는 『동아와의 합병계획을 중단한다』고 공식선언했다. 이때 부터 절정을 이룬 「봉고돌풍」은 「봉고신화」를 창조하면서 기아를 몰락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냈다. 기아는 이 신화를 재창조할 것인가.<박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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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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