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증시 기능 활성화의 의미

김우평 SK증권 대표이사

지난해 많은 기업들이 창사 이래 최대의 흑자를 거뒀다고 한다. 과거 같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조(兆)단위의 이익을 내는 세계 수준의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고 전세계시장에서 전해오는 우리 기업들의 혁혁한 활약상이 신문을 장식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로 모든 게 잘돼가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기업 실적은 최대라는데 청년 실업자는 늘어나고 소외된 계층에서는 생활고가 커져만 가고 있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이런 일들이 왜 벌어지는 것일까. 수십년간 고도성장을 구가해온 우리 경제는 현재 크게 두 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 하나는 성장 잠재력 저하이고 다른 하나는 경기 양극화이다. 이는 우리 경제가 그동안 우선시해온 양적 성장이 한계에 이르면서 선진국 초입 국면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인 진통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내부를 자세히 보면 이러한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원인을 현재 우리 경제 전반에 작동되고 있는 금융경제시스템에서도 일부 찾을 수 있다. 최근 우리 경제를 괴롭히는 실업률 증가나 400조원이 넘는 부동자금 등은 현재 우리 경제에 작동되고 있는 금융시스템이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시사해준다. 세계 자본시장이 이미 통합화 단계로 들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에 활력을 높이고 지속적인 성장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 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지난 IMF 환란 이후 지속적인 정부 규제 완화와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을 통해 글로벌 수준의 기업 경영과 금융시스템 개혁 과정이 진행돼왔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고 경기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개혁에 좀더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금융시스템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과거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된 증시기능 활성화를 통한 시스템 개선쪽에 개혁의 무게 중심을 둬야 한다. 효율적인 증시시스템은 세계금융시장이 통합되고 동조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며 성장 잠재력과 직결되는 핵심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최근 시중 부동자금은 넘쳐나는데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잉여자본을 투자자금으로 전환시키는 금융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면 이러한 문제 또한 상당 부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과 같이 금융산업이 은행권에 편중돼 있는 현상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하기 위한 활동이 요구된다. 이는 은행의 성격상 은행에 들어간 자금은 기업의 모험적인 투자활동을 싫어해 기업간 경기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며 경기 변동을 더욱 확대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증시가 활성화된다면 다양한 리스크 부담과 기업 미래 가치평가에 따른 가격기능이 잘 작동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시중자금이 수익성이 높은 성장산업쪽으로 흘러들어가 효율적 자본배분과 더불어 기업들의 투자 촉진을 유도해낼 수 있다. 특히나 차세대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산업과 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역할에는 보수적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은행권보다는 증시가 훨씬 효과적이다. 즉 중화학공업 등 전통산업기업을 지원하는 데는 협력적 금융거래 관계가 필요한 은행권이 낫지만 모험자본 투자를 필요로 하는 정보기술(IT) 업종 기업에 대해서는 다양한 리스크를 수용할 수 있는 증시가 자금조달 창구로서 훨씬 우월한 지위에 있다. IMF 이후 우리는 코스닥시장 활성화 등을 통해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시스템을 갖춰놓았지만 소프트웨어의 뒷받침 없이 하드웨어만 팽창함으로써 결국 가격 버블과 붕괴로 이어졌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스탠더드에 근접하는 투자자보호제도가 정착돼왔고 윤리경영 확산 등 증시 외적시스템도 제고되고 있어 과거의 뼈아픈 경험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요사이 적립식 펀드의 열기와 연기금의 증시 참여 확대로 장기투자 기반이 점차 두터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개인들의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주식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간접투자 상품이 보다 다양화될 경우 투자 위험을 줄이면서도 기업 이익을 가계 부문으로 재분배함으로써 기업-가계간 경기 양극화 현상을 완화시키는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신탁업과 신용파생상품 취급을 포괄하는 증권사 업무 영역 확대조치는 이러한 증시시스템 확충을 위한 일환으로서 매우 긍정적인 조치이며 각 증권사에는 위기이자 기회의 메시지를 던져준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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