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이후 한반도의 안정적인 통합을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독일 통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준비 없는 통일을 맞이하면 재정에 심각한 부담을 준다.
단적으로 독일은 통일 이후 재정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일명 통일세 같은 세금을 도입해 재정을 해소하려다 오히려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독일은 부가가치세와 석유세, 보험세 등 각종 간접세의 세율 인상과 통일연대부과금 도입으로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려 했지만 국민들의 강한 반발로 진통을 겪었다. 1991년 한시적으로 소득세와 법인세에 7.5%의 부가세율을 적용했다 이듬해 폐지했고, 1995년 이 제도를 부활시켜 1998년부터는 소득세와 법인세의 5.5%로 굳어졌다. 하지만 세금 부과와 사회보험료 인상을 통한 재원마련은 국가의 사회보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초래했고 저소득층의 경제적 부담이 커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독일은 통일 재원을 채권 발행과 연방정부 재정에 의존했다. 그러나 이 또한 준비된 계획이 아니기 때문에 통일된 독일에는 상당한 부담이 됐다. 채권 발행은 차입금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문제가 됐고, 통일기금의 한시적 운용이 종료된 이후에는 조세를 부과해 재정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연방정부는 지원금 마련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되풀이되면서 재정수지가 급속히 악화됐다.
우리의 경우 통일에 대비해 조성할 수 있는 재정 기반은 남북협력기금이 유일하다. 물론 통일에 따른 재정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민적 합의와 공감대 도출이 필요하다. 통일재원은 일이 터지기 전에 미리 쌓아두는 돈이라는 경제적 측면도 있지만 국제사회에 우리의 통일의지를 널리 알리는 효과가 있다. 통일의 주도권을 쥐고 이를 바탕 삼아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재원 마련과 함께 통일재원의 효율적 사용도 중요하다. 독일의 경우 통일을 원했던 동독 주민이 통일 이후 상당 기간 차별 의식과 이질감에 시달린 점을 감안하면, 우리도 통일 이후 사회보장 서비스를 북한 주민들에게 차등 제공하는 방안이 사회통합 관점에서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닐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 합의 도출이 선행돼야 한다.
통일 이후 재원과 관련해 가장 문제가 될 사안은 북한 주민 생활보장과 교육, 의료, 복지 등에 소요되는 비용이다. 북한 경제를 살리는 비용과 달리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비용은 재원조달 방식을 다양화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전적으로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결국 재원 마련 방안을 논의하기에 앞서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어느 수준에 맞춰야 할지 국민적,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독일은 통일 초기에는 서독과 동독이라는 보이지 않는 이질감으로 사회적 갈등이 많았지만 정치권이 국민적,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각종 노력에 최우선으로 노력했다"며 "결국 350만명에 이르던 동독지역 실업자를 서독의 사회보장제도에 성공적으로 통합함으로써 정치적 논란이나 사회적 불안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