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1급수, 3급수
강창현(문화레저부장) chkang@sed.co.kr
강창현(문화레저부장)
물은 과학적으로 오염된 정도를 나타내는 산소요구량에 따라 여러 등급으로 나눠진다.
자연 그대로 마실 수 있는 물이 바로 1급수다. 이 물이 흐르는 강의 바닥은 유리알처럼 훤히 비친다. 마치 물고기의 움직임이 없는 것 같지만 이곳에도 물고기들이 산다. 돌을 찬찬히 들어보면 버들치ㆍ어름치 등 작고 깨끗한 고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보기에는 좋지만 먹기에는 마땅찮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다’는 말은 과학적으로는 분명 맞지 않다.
현재 도시인들이 음용수로 사용하고 있는 상수원은 3급수다. 이 물은 그대로 마시지 못한다. 반드시 정화해야 한다. 하지만 이 물에는 큰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메기ㆍ붕어 등 매운탕을 끓여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통통하게 살 찐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상식적으로는 공감이 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정부와 여당은 대한민국을 1급수의 사회로 바꾸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해방 이후 누적된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투명하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자는 의지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사 규명문제도 물론 이러한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기업들에도 보다 깨끗한 경쟁을 주문하고 있다. 대기업 집단의 출자총액제도 등의 규제를 통해 1급수가 흐르는 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은 갑작스럽게 물이 바뀌면 그곳에서 살아왔던 고기들은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서민들도 그래도 지금까지는 통통한 물고기를 먹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먹거리를 구할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1급수 사회를 만들기 위한 또 하나의 결단이 지난달 23일부터 발효된 ‘성매매 특별법’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 누구나 성의 상품화가 없는 깨끗한 사회에서 인간대접을 받으며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고착화된 관습을 하루 아침에 뜯어 고치는 것은 이에 상응하는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이제 먹고 살 것이 없다” “사회 전체가 성매매 장소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 라고 항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0년대 미국 경제공황 때 전격적으로 실시했던 금주법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암시장에서의 밀주거래는 활개쳤고 마피아가 그 덕분에 큰 부를 축적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문화혁명으로 중국을 1급수 사회로 만들기 위한 도박을 감행했다. 젊은 홍위병을 내세워 중국 전체를 흔들었다.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데는 반드시 그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조반유리’(造反有理)가 명분을 앞세웠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성장은 이에 대한 부정에서 나왔다. 물론 일부 학자들의 말처럼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이 중국 현대화의 기초를 마련한 발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의 출발은 작은 고기들이 사는 1급수를 오염시키는 것이었다.
덩은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회주의 국가의 도그마인 평등과 균형을 넘어서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나 ‘선부’(先富)론을 주장했다. 검은 고양이나 흰 고양이나 쥐만 잡으면 되고, 아랫목이 따뜻해지면 윗목도 따뜻해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 결과 지금의 중국은 살찐 고기를 먹고 있다. 반면 사회의 오염 정도는 점차 심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대륙에서의 덩에 대한 지도자로써의 경외심은 식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1급수보다는 3급수를 유지하는 구조다. 어느 정도의 부패가 있고 갈등과 모순도 있다. 그 부패의 정도를 제어하는 것이 없애는 것보다 중요하다. 흐르지도 않고 고여 있던 물을 곧바로 퍼내버리면 주위의 땅도 곧바로 오염된다. 고여 있는 물은 물길을 만들고 흐르는 물과 합쳐지면서 점차 깨끗해지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계속 물갈이만 하면서 그 안에서 잘 자라고 있는 물고기를 죽이고 있다.
입력시간 : 2004-09-30 1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