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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의한 착시효과를 감안한다면 국내 기업의 수출 경기는 이미 마이너스 국면으로 진입한 것으로 봐야 한다."
국내 한 연구기관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들의 수출 경기가 사실상 마이너스로 진입했고 자동차 산업의 호조에 따른 '착시효과'가 실상을 가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동차와 차 부품, 타이어 등 차 관련 산업의 수출 호조 덕분에 전체 기업의 수출 증가율(지난 5월20일 기준)이 +0.1%로 나오지만 차 산업을 제외한 수출 증가율은 -2.3%라는 것이다.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의 수출까지 줄어들면서 국내 기업들의 실적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한국 대기업의 대부분은 수출형 제조업체다. 내수에 이어 수출까지 안 된다는 신호가 나오는 것은 수출형 대기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기업 실적이 악화된 결정적인 이유는 유럽의 경제위기다. 선박ㆍ컴퓨터ㆍ무선통신기기 등 유럽 수출 비중이 큰 품목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중국의 유럽 수출이 줄어든 것은 2차적인 악영향을 가했다. 철강ㆍ화학 등 중국이 수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반제품과 소재를 공급하는 국내 기업의 경기가 급속히 위축됐다. 이는 물동량 축소로 이어져 해운과 항공ㆍ종합상사들의 실적도 연쇄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산업군별로 보면 먼저 전자업계에서는 전반적인 실적이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증권사들은 삼성전자의 2ㆍ4분기 영업이익을 7조원대로 예상했다가 최근 6조원대로 하향조정하고 있다. 반도체 가격 하락폭이 커 메모리 부문의 부진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LG전자도 스마트폰 실적 부진으로 2ㆍ4분기 영업이익이 기대에 못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LCD TV 출하량도 줄어드는 등 TV와 가전에서도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소비침체 영향을 것으로 보인다.
철강업계와 조선업계의 지난 1ㆍ4분기 실적은 지난해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포스코의 1ㆍ4분기 영업이익은 4,22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4%나 급감했고 영업이익률도 지난해 1ㆍ4분기 10.1%에서 올해 1ㆍ4분기는 4.5%로 떨어졌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감산에 나섰던 2009년 2ㆍ4분기 영업이익률 2.7%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현대제철의 1ㆍ4분기 영업이익도 1년 전보다 49% 줄었고 동국제강은 1ㆍ4분기 19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조선업계도 2009~2010년 불황기에 저가로 수주했던 선박들의 매출비중이 높아지며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현대중공업의 1ㆍ4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9,69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4% 감소했다. 대우조선해양도 1ㆍ4분기 영업이익이 1,81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8.2% 급감했다.
정유ㆍ화학업계는 일부 업체가 이미 비상경영과 구조조정에 들어갔을 정도로 실적악화가 가시화됐다. SK이노베이션의 올 1ㆍ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2% 감소했고 GS칼텍스와 S-OIL의 영업이익도 각각 55.2%, 41% 줄어들었다.
이 같은 경영 악화에 따라 현대오일뱅크는 이달 초부터 예산을 긴축하고 출근시간을 30분 앞당기는 등 비상경영체제로 돌입했다. 올해 안에 추진하기로 했던 기업공개(IPO)는 최근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GS칼텍스는 지난 IMF 외환위기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영업인력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해운업계는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종철 한국선주협회장은 최근 회원사 사장단 연찬회에서 "해운 시장은 세계 경기 불황, 구조적인 선복과잉, 고유가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 같은 사정이 단기간에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는 올해 극심한 내수 부진에도 불구하고 5월까지 국내와 해외를 아우른 글로벌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10.3%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수출 및 해외판매가 잘 됐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르노삼성의 경우는 내수 수출 각각 38.3%, 21.8% 줄어들었고 완성차 5개사 중 유일하게 내수 판매를 늘린(4.8%) 한국GM도 수출은 0.4%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