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별유산 1년전

날자: 2002/04/13-14 (토/일)장소: 별유산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 가북면, 가야면) 등산일지: 수월리 (3:50) 각시소 &#8211;- 바리봉(5:50) &#8211; 장군봉(953) (6:25) &#8211;바윗길 &#8211; 의상봉 (8:00) &#8211; 별유산 (1,046m) (9:20) &#8211; 마당재(10:20) &#8211; 수월리 (11:30) 인원: 서울 솔로팀:13명, 안양팀:19명 솔로팀: 김부경, 김철승, 김형춘, 엄선희, 원정희, 유범수, 윤창환, 이미환, 이상철, 이순례, 지언영, 한기원, 채희묵 별유산의 하일라이트 의상봉 주차장에서 의상봉에 이르기까지 중간 중간에 있는 흙산 등성이에는 사람의 산행자국이 적어 나무들이 양옆, 위로 깨나 걸리적거렸다. 처음 이산 이름을 들었을 때 낯설었듯이 사람이 그렇게 찾지 않는 산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장군봉을 지나 이곳에 오니 30-40미터 높이의 큰 범종 같은 암봉이 떡 버티고 서 있고 아래 이곳 길목은 사람이 하도 많이 다녀 땅이 반들반들하다. 여지껏 올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8시. 이정표에는 “우두산(牛頭山) 의상봉”을 중앙에 써 놓고, 장군봉 2km, 상봉 0.5km, 고견사 1.2km. 이정표 세운 고견사의 두 처사 이름까지 들어있다. 총천연색의 등산팀 리본들 열댓개가 상여 나갈 때 만장처럼 나부끼는 걸보니 산을 즐겨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매력있는 곳임에 틀림없다. 암봉 중간쯤에 분홍색의 진달래 두어 그루가 가까스로 매달려 있다. 신라 향가 헌화가 (獻花歌)가 언듯 머리를 스친다. 수로부인이 강릉태수로 부임받은 남편을 따라가다 해변가 벼랑위에 핀 꽃 (철쭉)을 탐내는데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그런데 암소를 몰고 가던 한 노파가 소를 놓고 그 꽃을 꺾어 바치겠다는 노래다. 자주빛 바위끝에 잡으온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 하시면 꽃을 꺾어 받자오리이다 나도 아리따운 아가씨가 부탁하면 목숨을 걸고라면 벽을 타고 꺾어줄 용의는 있지만, 흔해빠진 꽃이라서 어느 누구도 눈길을 주는 것 같지 않다. 일찍 온 동료들은 암봉밑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아 도시락을 펼쳐놓았는데 이미 치우고 후식에 들어 간 사람들도 있다. 지난밤 9시 30분이되어 김밥집에 갔더니 문을 닫아 그냥 왔는데 영계이자 날센돌이 엄선희씨가 옆에 다른 동료들 것으로 배를 채웠다며 도시락 하나를 통째로 건넨다. 지난번, 관악산 산행에서 처음 이 크럽에 발을 디딘 선희씨는 계속 날라다니는 바람에 이곳에 와서야 볼 수 있었다. 조금 가벼워 보이기는 하지만(?), 이 순례님도 주차장에서 헤어진후 여기에서 처음 보게 되었다. 암벽만 따라다니면서 이렇게 선두그룹으로 다니는 걸 보면 실력과 경력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미환님은 지난 관악산때와 마찬가지로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모양이다. 계속 후미를 지키더니 김형춘님과 수호천사 지언영님의 후원을 받아 마지막으로 식사장소를 잡았다. 오면서 들은 바 있어 형춘씨에 바싹 다가 갔다. 팩에 든 막걸리, 다듬어온 오이와 양념처리된 된장을 꺼낸다. 지난 관악산에서도 뒤에 쳐지면서, 위스키와 막걸리를 한잔씩 걸쳤던게 생각이 나 특별이 가져 왔단다. 사람들은 의상봉 암봉을 오를 요량으로 모두 옆으로 달라 붙는다. 형춘씨는 기사도 정신을 발휘, 힘들어 하는 미환씨와 함께 고견사로 바로 내려가겠단다. 총무격인 천사께서도 동료애를 발휘 바로 하산행이다. 나는 절도 보고 싶지만 하이라이트인 이 암봉을 올라야 하겠기에 형춘씨에 절의 확인작업을 하나 부탁하고 나니 모두 올라가 안 보인다. 8시 30분. 부랴부랴 돌며 중턱에 오르니 밧줄을 내려뜨려 한사람씩 매달리고 있다. 이 팀을 따라 두 번씩이난 단련을 받은 터라 밧줄 잡고 오르는 것은 그렇게 겁나지 않는다. 정상에 오르니 사방이 파노라마처럼 눈에 들어온다. 산에 오르는 맛이 바로 이것이다. 동쪽 지척에는 이산 최고봉 상봉이 있다. 상봉 오른쪽 끝에 단발머리 소녀 얼굴이 바위위에 살포시 얹혀 있고, 그 왼쪽으로 코끼리가 코를 늘어뜨리고 있는데 코가 세 도막으로 잘려 머리부분이 짓누르고 있어 셋 중 하나만 슬쩍 빼면 금방이라도 앞으로 고꾸라질 것 처럼 되어 있다. 북동쪽으로 7부능선까지 허연 바위로 되어 있는 가야산 (1,403m)이 이내 눈에 잡힌다. 불교에서 삼보의 하나인 법보 (法寶)사찰인 해인사를 서쪽품에 안고 있는 산. 다른 당우(堂宇)들이 다 불에 탔어도, 팔만 대장경을 소장한 장경판전은 태우지않았다는 절이다. 팔만 대장경에 부처님 진리의 말씀(法)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으니 불가에서 이런 이름을 붙여 줄만도 하다. 가야산과 그 왼쪽으로, 두리봉, 깃대봉 (남산)이 북서남의 ㄱ자로 뻗은 고봉능선과, 남쪽의 단지봉, 남산 제일봉과 매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만들어 놓은 홍류동 계곡은 가야산 국립공원의 으뜸 계곡. 최치원 (857-?)이 만년을 이 곳 가야산 계곡에 들어와 지낸 흔적이 곳곳에 있다. 풍류를 즐겼다는 농산정(籠山亭)과 그의 시 제목을 세겨놓았다는 제시석 (題詩石). 해인사와 최치원이 모처럼 여기까지 와서 들르지 않는다고 욕을 해대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남동쪽으로는 정상이 “나르는 닭”같다고 해서 붙여진 육산 비계산 (飛鷄山:1,125m)이 피라미드 모양으로 묵직하게 이 산등성이와 고개로 연결되어 서 있지만 이곳 별유산과 대조적이다. 사방으로 1,000m 안팎의 준령들이 스카이라인을 형성, 맑은 날씨덕에 또렷하게 들어온다. 단체사진을 한장 찍고 하산하는데 반대편에 만들어 놓은 철계단을 이용한다. 90년대 초에 일부 계단을 만들었다 이제는 밑에까지 연결시켜 놓았단다. 여기서부터 최고봉이라는 상봉까지도 계속 암릉이다. 조물주의 바위조각 전시장 악산 (岳山)에서 흔히 느끼는 바이지만, 하느님 (조물주)은 정말 위대한 조각가다. 특히, 바위나 돌로 만든 그의 작품은 피조물 인간이 도저히 흉내내기 힘들다. 이 곳에도 암릉을 따라가다보니 산의 윗도리는 전체가 그의 대형 조각 전시장이다. 의상봉이 여기에서의 그의 대표작인 듯 싶지만 그 외에도 크고 작게 우뚝우뚝 암봉을 따라 세워 놓은 작품이 사방에 즐비하다. 큰 바위위에 불규칙하게 잘라 얹어놓은 바위들이 이렇게 세지 않은 바람에라도 금방 흘러내릴 것 같은데 “네가 죽을 때까지는 안떨어지도록 해 놓았으니 걱정말고 자주 오라”는 듯 싶다. 그리고 소나무를 바위위나 옆 틈새 어딘가에 그림같이 붙들어 매 바위에 생기를 불어넣는 그의 솜씨 또한 일품이다. 어떤 바위든 대칭이라든가 정각(定角)으로 잘라 만들어놓은게 아닌데, 전체적으로는 기막히게 조화가되어 있는데도 내 마음은 조바심이 나면서 이내 그의 작품에 빨려들게 한다. 석굴암을 만든 석공이 조물주에서 한수를 배웠는지 이 석불에서는 불균형의 미를 약간 발견할 수 있지만, 다보탑, 석가탑 등 불균형의 균형미를 조각해 놓은 인간의 석물은 한반도에는 거의 없어보인다. 작품마다 제목을 달아보고 싶은데, 그냥 감상만 하란다. 음악에서 표제음악보다 절대음악이 더 순수해 보이지 않느냐며, 제목을 달면 상상의 나래를 펴지 못하게 된다며 한방 먹이는 듯 싶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분다. 이 곳 바람의 여신이 보통 화난게 아닌 것 같다. 몸가누기가 쉽지 않은게, 지난 3월 8일 태백산 천제단과 문수봉에서 맛보았던 그 바람과 비젓하다. 암릉을 엉금엉금 기기도 하고, 우회도로를 걷기도 해서 상봉에 도착한 시각이 9시 20분. 봉우리 같지 않은 곳에 우두산 상봉 (1,046m)이란 표지판이 서있다. 의상봉과 같은 산 높이를 써 놓았다. 의상봉이 등산 객의 입에 더 많이 오르내리는 이유를 와보면 금방 느낀다. 그러나 여기서도 조망은 괜찮다. 바리봉, 장군봉, 의상봉, 상봉, 비계산 오르기전 계곡까지 원을 그리며, 그 너머 산들과는 다른 별천지를 만들어 놓았다. 별유산의 이름이 이백의 싯귀에서 問余何事 栖? ◆? (문여하사 서벽산) 笑而不答 心自閑 (소이부답 심자한) 桃花流水 杳然去 (도화유수 묘연거) 別有天地 非人間 (별유천지 비인간) 묻노라, 어찌하여 청산에 사는고? 답없이 미소뿐, 마음 느긋하구나 복사꽃 뜬 시내물 아득히 흘러가니 이것이 인간세상 아닌 별천지 아닌가! 그 유명한 이태백 (701-762)의 山中問答이다. 이백이 인생을 지긋하게 살고난 후 자연에 취해 읊은 그의 최고의 시로서, 산속 물흐르는 계곡에서 살면 부러울게 뭐가 있겠냐는 의미일게다. 자연주의 최고봉이다. 이곳 산의 이름이 별유(別有)인 것을 보면 이백의 이 마지막 싯귀에서 왔음이 분명하다. 그가 읊은 인간 세상이 아닌 도연명의 무릉도원쯤으로 비쳐졌던 풍경이 바로 이 산속에도 있다는 뜻일 것이다. 의상대사보다 한발 늦어 의상봉을 뺏기고, 허름한 상봉에다 붙인듯 하다. 사실 이 유별난 이름이 나를 끌어 당긴 것이다. 명찰 해인사가 자리잡고 있는 가야산 국립공원 밖 서남쪽 연봉으로 이어져 위치하고 있어 최근에야 인적드문 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인기를 더욱 끌고 있는 산이란다. 우두산 (牛頭山)으로 완전 둔갑한 별유산 여기서 해괴한 사건이 눈에 띈다. 고견사 절이 화마 (火魔)를 여러 번 겪으면서도 일주문은 타지 않고 그대로 오래 유지되고 있단다. 고견사를 들려온 형춘씨에 의하면 일주문의 문패 현판에는 “別有山寺 天城門”이라고 쓰여있어, 인터넷에서 본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문패가 파격이다. 보통 사찰이라면 산 + 절이름의 패턴을 따랐을 것이고, 자연히 “別有山 古見寺”라고 쓰여져야 옳을텐데… 하여튼 別有는 이백의 시에서 보이듯이 도연명의 무릉도원에서 힌트를 얻은게 분명한 도교의 신선사상이 스며있고, 天城門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와 관련이 더 많고, 절(寺)은 불교이고 보면 이 일주문에는 세 종교가 녹아있다. 그 이유는 주지스님도 모르겠단다. 하긴 일주문에서 의상봉쪽으로 보면 바위가 마치 천상에 이르는 성벽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독교를 생각안해도 자연스럽게 붙일만하다는 형춘씨의 얘기다. 그런데, 의상봉, 상봉, 주차장의 고견사 입구의 표지판을 보면 하나같이 우두산으로 써 놓았다. 소머리 같다는 뜻인데, 가야산 자락에 주봉을 포함 우두봉이 8개라는 말이 있는데 소와는 무관한느낌이다. 한편으로 가야국의 가야라는 말이 산스크리트(옛 인도어)어로 소라는 뜻이라서 그렇게 썼는지도 모를일이다. 소는 불교와 관련이 좀 있다. 그렇지만 불교와 관련지어 본다면 흔한 비로나자불의 “비로봉(산)”이 훨씬 나아보인다. 그러나, 누가 전에 별유산이라 명명했는지 모르지만, 그 말이 이산의 내용과 더 부합된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별유산이란 팻말이 상봉에 있었다니, 거창군이 아닌 이곳 절의 일부 처사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바꾸어놓은 것 같다. 일주문의 현판처럼 다시 바꿔 이백이나 도연명의 선계를 연상하게 하는게 훨씬 정감있어 보인다. 이런 상태로 조금 지나면 영원히 의미없는 이름으로 바뀌기 쉽상이다. 이름 때문에 왔다가, 달라진 이름 때문에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게 아닌가? 마당재에서 하산 능선의 마지막 지점 마당재에 이르니 김화영대장이 지켜서 있다. 의상봉 3.2km, 주차장 2.0km, 비계산 2.6km. 하산 반대편 산아래로는 죽전 저수지가 시원하게 눈에 들어 온다. 여기서부터는 흙내음과 풀내음을 맡으며 계속 주차장까지 내려가기만 하면 된단다. 잠깐 내려오다 길가 나무 그늘에 앉아 마지막 짐떨이를 한다. 오렌지, 쵸코렛, 사과, 음료등. 여럿이라서 있는 것 꺼내다보니 다양하게 맛을 볼 수 있어 좋다. 좀 더 내려오니 물줄기가 보인다. 이상철회장님께서, 잠깐 손과 발을 물에 담가 보잔다. 2프로(?)라면서 스테인레스 컵에 주시길레 입에 대니 소주다. 아직 이쪽 팀들의 언어에 익숙치 못한 탓인가? 물론 오징어와 육포도 준비되어 있다. 산에 많이들 다녀서인지 먹거리는 떨어지지 않는다. 여기에 남은 사람은 이회장님, 김철승님, 이순례님, 윤창환님, 한기원님, 유범수님. 걸을때는 물론이고 쉴때도 이회장님이 한마디씩 말을 재미있게 던지는데 유머가 프로급이다. 대부분이 사정권에 들어 있지만 오늘의 주 타깃은 이순례님, 한기원님인 것 같다. 스핀을 세게해서 핑하고 공격하는데, 역스핀으로 퐁하고 받아 넘기는 재치도 만만치 않다. 마치 국가대표 선수들 탁구 시합하는 것 같다. 산에 다니다보면 자연 발생적으로 그렇게 말에 유머와 재치가 베이는 건지, 타고난 건지 궁금하다. 듣다보면 발걸음이 저절로 가볍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헌데, 외워서 지면에 옮겨보고 싶은데 DOS 시대의 기억 용량도 못되는 나로서는 머리에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니 리플레이는 당연히 안될 수 밖에… 오래 같이 산행을 하신 분들은 그들의 유머 실력을 익히 잘 아시겠지만, 옮겨놓지 못해 생소한 분들에게 미안하다. 귀여운 제비꽃들 하산길에는 보라색, 노란색, 흰색 제비꽃들이 눈에 많이 띈다. 특히, 마당재에서 주차장에 내려오는 오솔길 등산로에는 조그마한 노란 제비꽃들이 마치 노랑 병아리 새끼들이 졸졸 따라오는 것처럼,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애교부리는 모습이 계속 보인다. 꽃잎 넷이 평평한 정사각형을 만들고, 그 아래에는 갈색으로 턱 수염을 그려놓은 꽃잎이 있어 장난기까지 줄줄 흐른다. 턱수염 꽃잎이 없다면 들에 흔히 보이는, 역시 귀여운 노란 애기똥풀이다. 옛날 오랑케들이 쳐들어오는 시기에 핀다해서 오랑케꽃 이라고도 하는 보라색 제비꽃 (violet)은 꽃잎을 변형시켜 꿀주머니를 만들어 마치 옆구리에 창을 찬 것처럼 꽃잎 옆으로 삐져나와 있다. 물찬 제비모습이다. 꽃이 매력이 없다는 생각에서인지, 색이 눈에 잘 안띨 것 같아서인지는 몰라도, 꿀로 벌, 나비를 꼬셔보겠다는 의도인 듯 싶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렇게까지 하지않아도 귀엽고 예뻐보여 벌, 나비가 찾아올 것 같다. 여자도 꼭 예뻐야만 남자가 따르는 것이 아닌 것 처럼…. 풀뿌리에서 풀잎과는 별도로 곧바로 가냘픈 풀대를 올려 10cm 남짓 끝에 꽃을 피우는 이들 제비꽃들은 하도 키가 작아 앉은뱅이 꽃이라고도 부르는데 그렇게까지 불러야 될까? 나무꽃이나 큰풀꽃 못지않게 지나가는 길손들의 눈길을 붙잡고, 소객(騷客)에게는 시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꽃인데 말이다. 거의 내려왔나 싶더니 이제서야 등산객들이 그룹을지어 몰려 온다. 그 동안은 우리팀 말고는 고작해야 너댓명밖에 못 만난것 같은데...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주차장에 내려오니, 일찍 내려온 사람들은 느릅, 더덕, 돌미나리 등 산에서 나는 풀류를 늘어 놓고 파는 할머니들한테 서성댄다. 6시간 가량 바위능선을 후비고 다닌터라, 막걸리 한잔정도는 해야할 것 같다. 이 회장께서 천막으로 지붕을 한 송판 마루로 모이란다. 그런데 한 할머니께서 돌미나리를 주시면서 된장있으면 시식을 해 보란다. 된장이 필요한데 미환씨는 천사와 형춘님이 고견사를 들르고 내려 오다 계곡 물속에 발 담그고 있다니 난감하다. 미나리를 씻어가지고 조금 기다리니 된장을 가지고 있는 형춘님이 내려온다. 미환씨가 향이 좋다며 맛있게 먹는다. 안주도 묵에 돌미나리를 양념을 했고, 또하나는 두부에 오이를 썰어 맛이 시원하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 듯하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말인가보다. 순식간에 안주가 떨어진다. 봄의 교향악, 꽃의 제전을… 주차장을 빠져나와 좁은 산촌 시멘트길을 달리는데, 초목들이 봄의 교향악 향연을 펼치고 있는게 산속에서는 느끼지 못한 풍경이다. 앞산은 소나무의 짙은 녹음 사이사이로, 가을에는 오색 단풍을 보여주듯, 마치 연녹색의 꽃을 피운 것 같다. 길가에는 산벚이 연분홍ㅢ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개나리가 푸른 잎 사이로 아직도 얼굴을 내밀고 있고, 진달래도 봄의 교향악 향연에 참여하고 가야겠단다. 울타리로 쓰이는 장미과의 명자나무는 붉은 꽃으로 장미가 오기전에 대신 피우겠단다. 그 외에도 너나없이 이 향연에 동참하겠다고 한다. 그래도 이날 제일 돋보이는 것은 국도나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양옆으로 보이는 소복한 듯한 조팝나무 (물싸리나무) 꽃과 배밭의 하얀 배꽃이다. 조팝나무는 듬성 듬성 덤불을 만들어 온통 흰 좁쌀이고 배나무는 큰 왕눈(雪)이 밑동부터 다듬어진 교목 가지에 다닥다닥 매달려 있어 눈이 부시다. 크기로 보면, 각각 바이올린과 첼로역이다. 배밭이 그렇게 많은 줄을 꽃이 핀 이날에야 알 수 있었는데, 특히 평택쯤에서부터 수원 넘어까지 고속도로를 따라 곳곳에 솜밭처럼 펼쳐져 있다. 그런데,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는 모습을 상상케하는 비발디의“사계 (四季: Four Seasons)중의 `봄`을 가져왔더라면 금상 첨화였을 텐데, 불협화음의 극치를 보여주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듣노라니 온 봄도 달아나는 것 같았다. 강남역에 도착한 시각이 4시. 고견사 주차장을 떠난지 4시간만이다.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뚫린데다, 전용차선으로 달리는 바람에 너무 빨리 도착한 것이다. 한기원님은 집에 전화하니 왜 그렇게 빨리 왔느냐고 놀래는 기색이라던데 나도 딸애가 등산하고 온거 맞느냐고 빈정댄다. 두 시간정도는 더 헤매다 왔어야 하는 건데… 사실 그 시뻘건 한낮에 배낭메고 강남역에 내리니 여간 쑥스럽지않았다. 세벽녘의 밤하늘 우리는 전날밤 10:30분 13명의 솔로팀 멤버를 태우고 강남역을 떠나 안양에서 또 다른 17명을 태워 이 곳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이 2시 50분. 5시 예정인데 대전-통영 고속도로가 뚫려 너무 일찍 도착한 것이다. 버스에 내려 하늘을 보니 황사현상은 전혀 없고, 머리위로 별이 크고 작은 다이아몬드처럼 촘촘히 박혀 있다. 금방이라도 내눈으로 쏟아져 내릴것 같다.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과 그 왼쪽 옆으로 홀로 있는 북극성이 다른 별들을 압도 한다. 생각은 나노초의 속도로 40여년전 여름밤의 고향집 마당으로 훌쩍 날아 간다. 밤에 모깃불 놓고 평상에 앉아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거나, 콩을 까다 모기에 뜯기며 누워 쳐다보던 그때 그 하늘이다. 한반도 허리에 쳐놓은 휴전선 같은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냐고 원망하는 별들의 표정이다. 서울에서 정착한 생활, 이 곳으로 와 사는게 여의치 않을 테니 무박으로라도 이런 산으로 와서 자주 만나자고 한다. 남북이산가족 상봉처럼 한 장소를 딱 정할 필요없단다. 가능한한 산속으로만 무박으로 오란다. 저희들도 서울에는 매연이 심해 얼굴을 내밀 수 가 없다고 안타까워 한다. 산에 오르기 시작한 3시 40분경에는 북두칠성도 국자의 끝에서부터 별을 하나씩 산너머로 숨기기 시작한다. 어둠속의 등산 너무 일찍 온 나머지 한시간 정도를 주차장에서 버스에 내렸다 올랐다 하면서 서성이다 4시가 채 못되어 인원 파악을 마치고 손 전등행렬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가파르게 올라간다. 양옆, 위 어디를 둘러봐야 별 의미가 없다. 다섯시가 넘어서야 어둠발이 거치면서 시야도 넓어진다. 바리봉에 거의 도착하니 해가 산과 산의 구름사이로 빼꼼이 얼굴을 내미는데 그 위로 젯뜨기 한대가 실 같은 하얀 포말을 내며 북쪽으로 지나간다. 5시 50분경. 암봉 바리봉 정상에 오르니 악산 별유산의 형태가 드러난다. 거의 잡힐듯한 원형으로 되어있다. 바리봉의 바리는 스님들의 속깊은 밥그릇으로, 엎어놓은 것 같아서 나온 이름인데, 작은 바리봉이라면 의상봉을 큰 바리봉으로 생각하고 붙여진 것이란다. 우리는 장군봉 (953m)을 향했다. 암릉을 지나고 나면 고개에는 흙과 낙엽이 있어 푹신푹신한데, 등산객들의 발길이 뜸했는지 길이 뚜렷하지 않고, 나무들이 옆으로 위로 기어들어와 있어 몸에 자꾸 스친다. 장군봉에 도착한 시각이 6시 25분. 역시 바람이 세게 불어 발을 고정시키는게 쉽지않다. 남쪽으로는 가조읍과 주위 마을이 산으로 옴팍 둘러싸여있어 도적이 들어와도 입구만 막으면 꼼작 못하고 잡힐 것 같다. 뚜렷하게 나타나는 분지형태다. 에필로그 설명없이 능선만 정신없이 다니다 보니, 장군재, 노르재, 용소폭포, 정자나무등 알아둘만한 곳도 그냥 스쳐지나갔고, 특히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고견사는 아예 처음부터 코스에서 빠져, 절은 그만 두고라도, 의상의 에피소드가 들어 있는 은행나무, 쌀굴등도 전혀 접근을 못해서 아쉬웠다. 양평에서 오신 원정희님, 춘천에서 오신 유범수님 이야기 나눌 기회를 못잡아 아쉬웠습니다. 산을 잘 골라주신 김화영대장님, 끊임없이 회원들을 보살피는 이회장님에 특히 감사드립니다. 안양에서 아버지따라 온 11살짜리 4학년 전현용군. 힘들어 하면서 끝까지 버티고 완주한거 파이팅! 끝 <채희묵 chaehmo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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