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전쟁등 고비때마다 채권발행 전비조달 역사미국 테러 대참사로 4일간의 휴장을 끝내고 17일 다시 문을 연 뉴욕증시의 주제는 애국심이었다. 대형 성조기가 월가에 걸리고 트레이더와 딜러들은 동료들의 죽음을 옆에 두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전9시30분, 리처드 그라소 뉴욕증권거래소(NYSE) 회장은 "우리의 영웅이 증권시장을 개장한다"고 소개하며 테러 현장에서 숨진 경찰관과 소방관의 동료들에게 오프닝 벨을 울리는 기회를 부여했다.
2분간의 짧은 묵념시간에 스피커에서는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라는 노래가 트레이더들의 심금을 울렸다. 포커판의 경쟁자처럼 서로를 속이던 그들은 친구가 돼 귀엣말로 투매 자제를 약속했다.
이날 뉴욕증시는 투자자들의 불안심리로 폭락했지만 테러 공격에 대한 애국심 덕분에 패닉을 면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루의 거래가 아니라 미래의 시장이었다.
애국심은 200여년 뉴욕 월가의 출발이고 역사다. 뉴욕 월가는 13개 식민주가 독립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전쟁채권을 발행하면서 시작됐다.
뉴욕의 상인들이 8,000만달러의 연방채권을 거래하기 위해 맨해튼 남단 나무그늘에 모인 것이 월가의 시초다. 그후 대영전쟁ㆍ남북전쟁 등에 필요한 전비를 소화해낸 것도 뉴욕 월가다.
남북전쟁 때 제이 쿡이라는 월가의 펀드매니저는 북군의 군비를 조달하기 위해 중소상인ㆍ농민을 찾아다니며 애국심으로 채권을 사라고 설득했다. 그의 호소에 응한 소액투자자들은 작은 액수의 채권을 매입함으로써 북군을 승리로 이끌어 미국을 통일시켰다.
지난 80년대 연방정부가 막대한 재정적자에 시달릴 때 미국인들은 뉴욕 월가를 통해 국채를 매입함으로써 정부의 파산을 막았다.
같은 시기에 자본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남미 국가들이 국가 파산을 겪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현대 들어 뉴욕 월가의 중심이 증권으로 바뀌면서 월가의 매니저들은 수많은 개인에게 자금을 모아 기업에 조달하고 있다.
뉴욕증시는 미국인과 미국기업을 연결하는 고리이며 증시가 살아야 투자자 개인과 기업이 동시에 산다는 등식을 형성했다. 그것이 월가의 애국심이다. 뉴욕 월가는 테러리스트의 잔인한 공격에도 불구, 애국심을 발휘해 금융시장을 살리고 개인투자자와 산업을 보호하는 의무를 행한 것이다.
9.11 참사로 뉴욕 월가가 휴장하고 있는 동안 한국증시는 종합주가지수의 경우 14.8%, 코스닥지수는 25.4%나 폭락했다.
정작 피해 당사국은 애국심을 발휘, 증시 낙폭을 줄이는데 태평양 건너 한국증시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한국증시도 뉴욕증시나 소수 외국인투자가의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할 것이 아니라 한국시장과 기업ㆍ개인을 살리는 애국의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증시가 살아야 경제가 살고 나라가 산다는 간단한 명제를 21세기 첫 전쟁에서 뉴욕 월가가 제시하고 있다.
뉴욕=김인영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