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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금융지주의 한 고위 임원은 최근 사석에서 "금융계에 닥치는 위기의 징후가 점차 짙어지는 것 같다"면서 "각 계열사를 점검해봤는데 안심할 곳이 하나도 없다. 마지막 보루인 은행마저 솔직히 힘들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금 국내 금융회사들의 상황을 보면 '현재'와 '미래'에 모두 먹구름이 짙게 끼어 있다. 당장 현재의 모습을 보면 실적이 무서울 정도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은행들은 이미 상반기에 순이익이 반토막이 난 데 이어 하반기 감소세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보험 등 여타 산업의 실적 감소세도 심상치 않다. 여기에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한편 저금리가 계속되면서 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고 역마진이 실적의 하락세를 부추기고 있다. 특히 정부가 가계와 기업 등 실물의 부실이 현재화하는 것을 막고 선거 이후로 대거 미루기에 나서면서 금융회사들이 희생양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은행부터 신협까지 일제히 실적 반토막=4대 지주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5조858억원으로 지난해(5조6,277억원)보다 9.6%가량 줄었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로 인한 염가매수차익(1조388억원) 등 일회성요인을 제외하면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30%나 급감했다.
특히 은행권의 상반기 순이익은 5조5,000억원 수준으로 지난해 상반기(10조원)에 비해 거의 반토막이 났다. 이병윤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향후 경기전망도 좋지 않고 신용위험도 높아질 것으로 보여 올 하반기에도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상장 보험사들의 2011회계연도 당기순이익은 13.2%나 감소했다. 특히 손보사에 비해 생보사 실적악화가 두드러졌다. 대형사의 경우 지난 2011년 회계연도 당기 순이익이 절반가량 줄어든 곳도 있다. 증권회사의 올 1ㆍ4분기(4월~6월) 당기순이익은 2,163억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766억원이나 줄면서 자기자본이익률(ROE)도 1.6%포인트나 떨어진 0.5%다. 1,000원의 자기자본을 가지고 5원의 이익을 내는 데 그쳤다는 얘기다. 잇따른 수수료 인하에 신음하는 신용카드사는 순이익 하락에 이어 추가 규제에 울고 있다. 신용협동조합ㆍ저축은행은 구조조정의 너울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연체율이 상승하는 것이 더욱 문제다. 이날 금융감독원이 밝힌 7개 전업카드사의 올해 2ㆍ4분기 총채권 실질연체율은 2.74%로 1ㆍ4분기보다 0.06%포인트 올랐다. 2010년 말 2.14%이던 연체율은 2011년 6월 말 2.28%, 2011년 말 2.57%, 2012년 3월 말 2.68% 등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0.93%로 전월보다 0.10%포인트 올랐고 기업대출 연체율도 전월보다 0.41%포인트 상승해 1.73%를 기록했다. 연체가 쌓이자 은행들은 올해도 30조원에 육박하는 부실채권을 정리해야 하는데 이는 그만큼 실적이 악화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카드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2004년 때도 그랬듯이 신용카드 연체율은 어느 한순간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기에 하우스푸어로 대변되듯 집값 하락은 추가로 부실이 얼마나 생길지 가늠하기조차 힘들게 하고 있다.
◇감원ㆍ감봉ㆍ의무휴가…비상경영체제 선포=실적악화에 금융회사들은 일제히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상당수 금융회사가 올해 초 선언한 비상경영체제 단계를 넘어 감원ㆍ감봉ㆍ의무휴가 등 '비상카드'를 하나씩 꺼내 들고 있다. 은행권은 주로 임직원 감봉과 의무휴가제 등으로 위기준비에 들어갈 태세다. 예컨대 농협금융지주는 7개 계열사 경영진의 임금을 8월부터 12월까지 10% 삭감한다. KB국민은행 등 은행권은 급여를 줄이되 휴가를 늘리는 방안을 찾고 있다.
보험업계에는 올해 말까지 10%가량 인력을 줄이겠다는 복안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이미 대규모로 감원했던 삼성생명ㆍ삼성화재 등 대형사들은 올해 경영여건상 추가 인력축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카드사 역시 올해 10%가량 인력을 줄일 예정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노조의 공동단체협상 결과에 따라 적지 않은 감원ㆍ예산감축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