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박서보 추상미술 60년'을 돌아보다

서울·부산서 나란히 대규모 회고전 열어<br>'묘법' 시리즈등 대작 50여점 시대순 선봬

한국 추상미술계의 1세대 대표작가인 박서보 화백의 화업 60년을 되돌아보는 대규모 개인전들이 잇달아 열린다. 작품 자체는 단색의 단조로운 화면이지만 그 안에는 수행에 가까운 반복적 손길이 깃들어 있다.

오늘의 한국미술을 논하면서 화가 박서보(80ㆍ사진)를 거론하지 않으면 이야기 전개가 어렵다. 1950년대 문화 불모지였던 한국에 추상미술의 뿌리를 내리게 한 그의 60년 화업은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와 동반자처럼 함께 걸었다. 그의 작업 여정을 되돌아보는 대규모 회고전이 서울과 부산에서 나란히 막을 올린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는 개관 이래 처음으로 본관ㆍ신관에서 단일 전시를 선보인다. 25일 개막해 내년 1월20일까지 작가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대작 50여점을 시대순으로 보여준다. 부산시립미술관은 12월 11일부터 내년 2월20일까지 '박서보 전'을 개최하며 해운대구 소재 조현화랑도 같은 날 개막해 내년 1월30일까지 박서보 회고전을 연다. 미술관과 갤러리가 이례적으로 한 작가를 조망하며 서울과 지방의 문화격차를 극복하고자 마련한 전시다. 193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박서보는 홍익대 서양화가 출신으로 97년까지 홍익대 교수를 거쳐 명예교수로 선임되기까지 이른바 '홍대화파'의 구심점이 됐다. 그는 일찍이 앵포르멜(Informel) 추상주의를 받아들였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에서 일어난 추상회화 운동인 앵포르멜은 정형화된 기하학적 추상에서 벗어나 격정적이며 주관적인 추상회화를 펼치는 비정형 예술을 가리키는 것으로 박서보 예술세계의 핵심이 됐다. 23일 국제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는 "그리기는 자신을 갈고 닦는 수신(修身)의 과정이고 회화는 이제 나에게 시각적 탐구를 넘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며 '자기 수련의 산물'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가 67년부터 시작한 '묘법(描法)' 시리즈에 대한 얘기다. 불어로 '에크리뛰르(Ecritureㆍ쓰기)'라고 이름붙인 이 작업은 캔버스에 밝은 회색이나 미색의 물감을 바르고 그 위에 연필로 반복적으로, 끊기지 않게 그은 선으로 이뤄져 있다. 지극히 서양적인 재료들이지만 박서보는 이 안에서 동양 수묵화의 기본인 정신성을 강조한다. 작가는 "이 '쓰기'의 회화는 그리고 지우고 반복하는 순환적 구조를 통해 무언가를 그리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나와 작품이 일치하는 순간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89년 이후에 작가는 한지(韓紙)를 겹겹이 화면에 올린 뒤 손가락이나 도구를 이용해 밀어내는 방식의 작업으로 회화의 물질감 구현에 집중했다. 무심한 반복행위를 통해 평면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 시도다. 단색, 무채색의 전작들과 달리 근작에서는 자유와 해방을 구현하듯 화려하고 밝은 색채들이 등장한다. 화가의 원숙한 삶이 색의 과감한 사용을 허락한 듯하다. 이미 세계적인 작가로 이름을 새긴 박서보는 이우환과 더불어 유럽에서도 인정받은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작가이며 세계 공용의 대학미술 교재에 아시아 현대작가 중 백남준과 더불어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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