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외출했다가 다시 검토실에 들어온 서봉수9단이 지금까지의 수순을 확인하고 나서 말했다. “한상훈은 역시 큰 그릇이야.”(서봉수) “무얼 보고 하는 소리여?”(필자) “우상귀에서 흑 4점을 끊어잡을 수가 있는데도 잡지 않고 전체를 공격한 그 배짱이 아주 맘에 들어.”(서봉수) “하지만 공격에 실패하면 즉시 집부족 증세에 걸릴 공산이 커요.”(김성룡) “실패할 때 실패하더라도 큰 뜻을 품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해. 눈앞의 과실만 똑똑 따먹는 바둑은 크게 되지를 못해.”(서봉수) 백56은 당장 어떤 이득을 보자는 수순이 아니다. 오른쪽 흑대마를 공격하기 위한 사전공작이다. 흑59의 건너붙임은 진작부터 보아둔 공격의 급소였다. 이 수가 놓여서는 백에게 활로가 없다. 그러나 한상훈은 백70을 선수로 활용하고 72로 끊었다. 험악한 난타전이 벌어졌다. 한상훈은 우변 흑대마의 공격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태세였다. 실전의 수순 가운데 흑63으로는 참고도1의 흑1로 되몰아 패를 낼 수도 있다. 팻감도 흑쪽에 유리하므로 이렇게 두는 것이 더 강력한 의미가 있었다. 왜 이 코스를 밟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세돌의 대답은 간단했다. “실전처럼 두어도 충분하니까요.” 백68로는 참고도2의 백1에 끊는 변화도 있었다. 그것이면 백이 흑 6점을 잡게 되지만(11은 8의 자리) 흑의 세력이 너무도 웅장하게 되므로 백이 불리하다. 그것을 잘 아는 한상훈은 실전보의 진행을 선택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