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8월23일] 나이팅게일


데이비드 부부는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을 정성을 다해 모셨다. 적극적인 사회활동의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나이팅게일은 데이비드 부부의 집에서 살며 휴식을 얻었다. 1909년 8월23일 늦둥이 딸을 얻은 부부는 아이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데이비드(Florence Nightingale David). 90세 천수를 누리는 동안 간호사로 지낸 기간 2년을 제외하고는 평생을 통계학 지식을 바탕으로 한 사회환경개선 운동에 힘쓴 나이팅게일의 이름을 받았기 때문일까. 아이는 훗날 세계적 통계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런던 베드퍼드여자대학 수학과를 졸업한 데이비드가 원했던 직장은 보험사. 보험계리인이 되고 싶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취업을 거절 당해 낙심할 무렵, 누군가 칼 피어슨 교수를 소개했다. 현대 통계학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피어슨의 연구조교로 일하며 표본추출과 확률조사라는 통계기법을 개발하는 데 기여했다. 당시 얼마나 일에 몰두했는지 논문 하나를 쓰기 위해 계산기를 200만번 켰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2차 대전 중에는 국가안보국에 들어가 독일군의 공습과 피해 정도를 예측하는 통계적 모델을 만들어 수많은 생명을 구해냈다. 여성에게는 학과장 자리를 줄 수 없다는 런던 유니버시티칼리지를 떠나 캘리포니아주립대학ㆍ버클리대학 등의 통계학과 설립과 학과장을 맡았던 데이비드는 1977년 은퇴 후에도 1995년 사망할 때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며 10권의 책과 100편이 넘는 논문을 남겼다. 주사위의 기원에서 드 무아브르의 확률론에 이르기까지 통계와 확률의 역사를 담아 1962년 발간한 ‘게임과 신, 그리고 도박’은 통계학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연구이자 리스크 관리론의 영역을 넓혀준 책자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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