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계 학회지에 발표되는 일부 논문이 표본이나 모집단 규모설정 등에 상당한 오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언론에 보도되는 과정에서 연구결과가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특정사안이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상황처럼 포장돼 적절한 자제가 필요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발표되는 상당수 논문은 정부가 보건정책을 결정하는데 기본자료로도 활용되기 때문에 국민건강을 위해서는 보다 신중하고도 심도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모 대학병원 K교수팀이 학회지를 통해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흔한 급성 호흡기질환의 폐구균 항생제 내성이 심각하다”는 논문내용을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대대적으로 알린 것도 이 같은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K교수팀은 2000년 5월~ 2003년 6월까지 전국 9개 대학병원 외래를 방문하거나 입원한 10세 미만 급성부비동염(축농증)ㆍ급성폐렴 및 중이염 환아에게 분리한 156개 폐구균을 대상으로 항생제 페니실린 내성률을 조사한 결과 축농증 71.4%(21명중 15명) 급성폐렴 73.4%(94명중 69명) 급성중이염 92.7%(41명중 38명)으로 평균 78.2%(122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주장했다.
폐구균은 소아의 중이염과 축농증ㆍ폐렴ㆍ뇌수막염 등을 발생시키는 흔한 병원균 중의 하나이다. K교수는 이러한 분석결과를 근거로 언론사에 배포한 A4용지 2매 분량의 보도자료를 통해 “항생제의 적절한 사용과 함께 2세 이하 영-유아들에게 폐구균 백신을 접종하면 감염자체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급성폐구균 백신을 접종하기 위해서는 10만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
그러나 관련분야에 몸담고 있는 상당수 전문의와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결과를 우리나라 10세 이하 어린이들이 그렇다는 식으로 일반화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모 대학병원 전문의는 “대부분 증상이 악화한 상태의 대학병원 외래와 입원 환자들을 분석했다는 점과, 연구대상자 규모가 지나치게 적은 것을 한국전체 상황으로 단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전문의도 “항생제 내성문제와 폐구균 예방백신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지만 국내 어린이들의 축농증ㆍ급성폐렴ㆍ급성중이염 페니실린 내성률이 70~90%로 인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논문발표로 인해 자칫 백신접종의 무분별한 남용이 조장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전문의는 “항생제 내성에 대한 계산법은 병원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학병원이므로 상대적인 수치가 높을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관련 분야는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연구결과는 언론발표보다는 의학계 내부적으로 보다 심도 있는 토론과 연구를 통해 적절한 해결책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연구를 실시한 병원 9곳(성모자애병원 성모병원 성빈센트병원 성바오로병원 대전성모병원 고대안산병원 부산대병원 마산파티마병원 인하대병원)의 선정기준이 애매할 뿐만 아니라 특정질환의 경우 병원별 분석환자가 평균 2명밖에 안 되는 것을 국내 전체 흐름이나 상황으로 볼 수 없어 조사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항생제 내성이 높다는 주장은 평소 의사들의 약물처방에 큰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 아니냐”면서 항생제 처방에 대한 의료계의 자성과 약물처방의 가이드라인 제시를 촉구했다.
한편 K교수는 “병원 외래에서 쓰는 항생제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는 환자가 어느 정도 상황에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면서 “통계-조사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부인하지는 않겠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디자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선진국의 경우 3~4년 주기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국내역시 이러한 종류의 데이터가 있었기 때문에 폐구균백신이 들어 오게 된 것”이라면서 “연구에 참여한 의료기관 중에는 2차로 분류된 병원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이번 연구는 항생제의 무분별한 남용을 막자는 것이 목적이지 백신접종에 포인트를 맞춘 것은 결코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