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김대중 당선자에게/양평 편집위원(데스크칼럼)

김대중 당선자, 우선 당선을 축하합니다.그러나 축하인사를 건네기 전에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입니다. 한국현대사의 큼직한 사건과 사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신문들이 당선자의 이름을 쓰지 못해 「재야인사」로 표기했던 일, 5년 전 당선자가 울먹이며 사퇴하던 일…. 그러나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헌정사상 최초의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입니다. 김당선자는 이제 말 그대로 나라의 주인이 된 그들에게 고마워하기 전에 두려워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랜 동안 여러가지 이름으로 나라를 이끌어온 집권당이 물러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입니다. 엊저녁의 개표에서 당선자는 어느 지역에서는 90% 이상을 얻는가 하면 어느 지역에서는 한자릿수의 지지율을 얻었습니다. 당선자는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해 담담한 마음이었습니까. 그렇지는 않을 줄 믿습니다. 개표 때야 그 아픔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해도 이제 그 숫자들을 다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 숫자들은 모두 우리 사회의 병리검사표 같은 것입니다. 당선자는 그 모든 숫자에서 전국평균치를 벗어난 숫자를 일단 병리현상으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당선자가 거둔 90% 이상의 득표율도 우리 사회의 최고혈압으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선지 길게 축하인사를 늘어놓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호가 표류하고 있어 당선자는 서둘러 키를 틀어쥐어야 합니다. 그런 것은 같은 정권 내에서도 어려운 일 아닙니까. 귀하는 간밤에 주위의 환호에 맞장구치면서도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경제를 걱정했을 것입니다. 당선되면 경제를 구하겠다던 약속이 천근무게로 다가왔겠지요. 오늘부터 김당선자는 당선사례를 하는둥 마는둥 미국과 일본으로 경제외교를 떠날 준비에 매달려야 할 판입니다. 한마디로 「당선자」가 아니라 「대통령」입니다. 물론 임기가 늘어났다고 기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중환자를 두고도 당직의사가 실종상태여서 다음번 의사가 새벽같이 쫓아나온 형국입니다. 의장대사열도 못 받는 「원수외교」를 서둘러야 하는 것도 그런 것입니다. 말이 원수외교지 돈사정하러 가는 것입니다. 김당선자는 전임대통령이 재임중 5백억원 이상을 들여가며 화려한 나들이를 했던 사실을 옛날 어느 임금님이야기처럼 잊기 바랍니다. 말을 하다 보니 빨리 나가서 돈 얻어오라고 떠민 셈이 됐습니다. IMF라는 불을 끄는 것 말고도 할말은 많습니다. 우선 바라는 것은 당선자의 고해성사입니다. 그것은 김당선자만이 아니라 모든 대통령이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 할 수 있습니다. 진흙탕 같은 정치판에서 싸워 오늘에 이르기까지 묻은 후보의 때를 씻고 대통령으로 거듭 나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다』는 결백선언이라면 거둬주십시오. 당선자는 허물을 모르는 제왕이 아니라 죄있는 인간의 모습으로만 국민들과 함께 우리나라에 가득 찬 허위를 씻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할말을 다한 느낌입니다. 다음으로 바라는 과거와의 단절도 그 말을 맴도는 것입니다. 당선자가 가장 서둘러야 할 일은 자신의 과거와 단절하는 것입니다. 앞서 거듭난다는 말을 했습니다만 가장 열성적인 동지들, 그리고 당선자의 분신이나 「김대중 공화국」으로 불리는 호남과 단절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역사상 어느 지도자에게도 그처럼 어려운 일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김당선자가 신세진 지지자들 가운데는 당선자의 모든것을 주고도 그 희생을 보상할 수 없는 이들은 물론 갚을 기회를 영영 놓친 경우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당선자는 그것을 해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김당선자와 지지자들이 겪은 희생에 비해 그 대가가 너무 초라합니다. 한마디로 이번 선거는 정권교체의 의미 못지않게 지역갈등을 해소하라는 계명의 의미도 큽니다. 당선자는 사실상 지역갈등의 희생자이면서도 항상 그 책임자처럼 거론돼왔습니다. 이제 당선자는 이를 변호하고 그 원인을 치료할 권리와 책임을 떠맡았습니다. 지역갈등을 해소하는 문제야말로 당선자가 경제문제보다 더 오랜 세월 매달렸을 과제여서 더 할말이 없습니다. 다만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의견을 말한다면 그 문제 자체를 당선자 스스로 잊어주시는 것이라고 봅니다. 한마디로 소외지역이니 지역화합이니 하는 말 자체를 잊고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국토와 그 인적자원을 국익에 맞게 활용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전임자들이 두어온 바둑판을 이어받아 최선의 수를 찾아주십시오. 국토 같은 반면에는 인적자원이 바둑돌처럼 놓여 있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당선자는 전임자들이 어느 구석에 놓았던 완착을 바로잡기보다 반면 전체를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너무 어려운 과제고 자칫 배신자라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만 당선자를 진정 아끼는 이들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김당선자,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수적인 관건이 경제문제입니다. 당선자는 IMF불을 끈 뒤에도 그동안 산업간 불균형, 계층간 불균형 등 여러가지 불균형으로 병든 경제를 정상적인 모습으로 바로잡아야만 합니다. 그것은 5년 임기가 모자라는 장기과제이니 당선자는 졸속의 완성품보다 탄탄한 주춧돌만 놓는다는 신념으로 진력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건강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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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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