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9월30일] 존 필비


탐험가이며 지도제작자, 중동에 미국 자본을 끌어들인 주역. 영국인 존 필비(John Philby)의 약력이다. 이스라엘 건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영국 첩보부에서 30년간 근무하다 소련으로 망명한 희대의 스파이 킴 필비의 아버지다. 1885년 실론에서 태어난 필비는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1908년 인도정청 관리로 사회에 발을 들였다. 급우였던 자와할랄 네루의 영향으로 인도 문화를 존중하려고 애썼다고 전해진다. 1910년에는 몽고메리 중위(2차 대전시 영국군 총사령관)의 친척인 도라와 결혼했다. 인생이 바뀐 계기는 1915년 중동 파견. 아랍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지원하는 동안 필비는 다섯 살 위인 유목민 전사 이븐 사우드 사우디 수장과 만나 평생 친구로 지냈다. 지리학자로 이름을 날린 것도 이 무렵이다. 필비는 1925년 사표를 던졌다. 영국의 중동분열 정책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종교도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압둘라’라는 새 이름도 얻었다. 사우디왕국의 자문관으로서 필비의 줄타기가 이때부터 시작됐다. 영국과 미국을 오간 끝에 유전 가격을 최대한 끌어올려 미국계 소칼사(셰브런텍사코의 전신)에게 석유개발권을 내줬다. 스페인을 통해 독일에 석유 수출을 시도하다 영국 당국에 ‘국가반역 혐의’로 체포된 적도 있다. 경제학자 케인스의 적극적인 구명운동 덕분에 6개월 만에 풀려난 필비는 유대인 문제에도 개입했다.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받아들이되 미국과 영국이 보상비용을 대는 ‘필비 플랜’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건국운동을 도왔다. 1957년 수에즈 위기에서도 막후역할을 맡은 것으로 전해진다. 필비 자신도 평범하지 않은 삶이 고단했을까. 1960년 9월30일 ‘너무 지겹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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