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이사(理事)가 임무 소홀로 회사에 손실을 초래했다면 불법행위 책임이 아니라 회사와 계약을 지키지 않은 일종의 채무불이행으로 배상 책임을 져야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3부(조경란 부장판사)는 신용보증기금이 '신용불량 업체에 보증서를 발급해 손실을 입혔다'며 전 임원 손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3천41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14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의 이사인 피고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를 기울여 원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데도 신용보증 요건을 갖추지 못한 업체에 보증서를 발급해 원고에게 끼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는 원고측이 검찰에 수사를 요청한 2001년 9월을 기준으로 3년이지나서 소송이 제기돼 불법행위 손해배상 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하나 이사의 임무 소홀로 인한 책임은 민법의 불법행위 시효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의 경우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간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가 완성돼 소멸한다.
반면 일반 채권은 10년 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재판부는 "이사의 임무 소홀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은 상법이 인정한 일종의 특수한 계약 책임이다. 원고가 2001년 9월부터 10년이 지나기 전 소송을 낸 사실은 분명하므로 소멸시효가 끝났다는 피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고의ㆍ과실에 따른 불법행위의 손해배상 책임은 3년이 지나면 소멸하지만 일반 채무는 10년이 지나야 소멸한다. 이번 판결은 이사의 업무 해태(懈怠ㆍ게을리 함)에 대해 소멸시효를 폭넓게 적용해 엄격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고 말했다.
원고측은 손씨가 이사로 있던 1999∼2000년 신용불량 업체 2곳에 대출용 신용보증서를 발급하도록 지시했다가 이들 업체가 제때 대출금을 갚지 못해 대신 변제하느라 손실을 입자 지난해 손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