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버팀목 수출마저 "총체적 위기"

고유가·美금리 영향 주력수출품 실적 둔화<br>내수불황 무풍지대 수입차도 판매 어려워<br>철강등 원자재값 올라 제조업 채산성 심각

재계의 ‘한국경제 추락 가능성’ 경고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내수경기는 빈사상태에 빠진 지 이미 오래고 경제의 마지막 버팀목이던 수출까지 기력이 약해졌다. 여기에다 일본발 원자재ㆍ부품대란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채산성 악화 현상도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내수는 빈사상태=서울 강남의 수입차 대리점들은 요즘 판매부진으로 초비상이다. 무이자 할부에 각종 할인혜택을 내걸고 ‘호객’에 나서보지만 소비자들은 요지부동이다. 서울 강남에 사는 부유층마저 지갑을 닫아버렸다는 뜻이다. ‘나 홀로 호황’을 구가해왔던 수입차의 판매부진은 이제 내수불황의 ‘무풍지대’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수의 빈사상태는 한국은행의 7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 내수지수에서도 ‘69’라는 숫자로 뚜렷하게 드러났다. 2,485개의 기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는 응답업체 200곳 중 131곳꼴로 내수가 지난달보다 더 나빠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업체들이 경영애로 사항으로 내수부진(33.8%)을 가장 많이 꼽은 것은 내수부진에 대한 기업들의 고통을 반증한다. 이처럼 내수경기가 빈사상태로 치닫는 이유는 가계부채와 고용불안 문제가 좀처럼 해결기미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다 그나마 지난 상반기 돈이 돌던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마저 싸늘하게 식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투자 활성화와 주식 및 부동산시장의 부양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규황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기업들은 투자할 돈이 있어도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면서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관련 규제를 대대적으로 완화함은 물론 기업도시특별법 제정도 기업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동산과 증시의 거래세를 내려 시장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 필요하다”며 “특히 부동산의 경우 투기를 부추기지 않는 범위에서 거래에 숨통을 틔워준다면 경색된 자금흐름이 정상화될 가능성이 있고 시장 분위기도 많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기상도 ‘폭풍전야’=국제유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깨뜨리면서 우리나라 경제의 마지막 버팀목인 수출전선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의 금리가 내년까지 2%포인트 이상 인상될 것이라는 전망이 잇달아 제기되면서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텃밭’인 미국시장이 위축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번 한은 BSI 조사에서도 고유가와 미국 금리인상 움직임이라는 돌발 외생변수로 인한 수출기업들의 경기심리 위축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내수기업의 업황BSI가 75에서 69로 6포인트 떨어진 데 비해 수출기업의 업황BSI는 85에서 74로 11포인트나 급락, 내수기업의 하락폭을 크게 웃돌았다. 최근 수년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려왔던 수출실적도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전자ㆍ기계 등을 중심으로 크게 둔화되고 있다. KOTRA가 최근 해외주재 바이어 6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하반기 우리 기업의 수출증가율은 2ㆍ4분기의 39%에 크게 못 미치는 22~24%에 그칠 것으로 나타났다. 현명관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지난주 제주 서머포럼에서 “한국경제를 이끌어가는 두 개의 엔진 중 내수엔진은 이미 작동을 멈췄고 수출엔진마저 고유가에 미국 금리인상 등으로 시계가 불투명해 힘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수출업체들은 유가상승이 원가상승ㆍ수요위축을 불러와 수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걱정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의 한 관계자는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를 때마다 8억달러의 무역적자 요인이 생긴다”며 “올해 유가 평균을 배럴당 33달러로 가정했을 때 지난해에 견줘 55억달러의 적자요인이 되는 것으로 전망했는데 유가가 이를 뛰어넘는다면 적자요인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채산성도 위기국면=A자동차업체의 K상무는 “일본 철강업체들이 자동차용 강판 값을 터무니없이 요구하고 있어 채산성을 맞추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한숨을 쏟아냈다. D전자업체의 P사장도 “일본 부품업체들이 핵심 전자부품의 가격을 계속 올리면서 여차하면 수요처를 바꾸겠다는 엄포도 서슴지 않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장기불황의 터널을 벗어나 활력을 되찾은 일본경제의 호황이 일본의 부품ㆍ소재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채산성 악화’라는 고통을 주고 있다. 이번 한은 BSI 조사에서 채산성지수는 ‘75’로 나타났다. 특히 철강업종의 경우 일본업체들이 열연강판ㆍ후판ㆍ냉연강판의 가격을 잇따라 올리면서 ‘일본발 원자재대란’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신일본제철ㆍJFE스틸 등 일본 철강업체들은 올초 톤당 300달러였던 열연강판 가격을 2월 350달러, 5월 450달러로 올린 데 이어 8월부터는 510달러로 인상했다. 또 선박?철강재인 후판의 경우 일본 철강사들은 현재 톤당 450달러에서 4ㆍ4분기 이후에는 톤당 650달러로 올리겠다고 예고했고 냉연강판도 JFE 등은 오는 10월과 내년 4월 등 2단계에 걸쳐 값을 올리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철강을 원재료로 쓰는 자동차ㆍ전자ㆍ조선 등 국내 제조업 전반이 채산성 위기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본격적인 회복국면을 맞고 있는 일본은 물론 미국의 철강경기도 대단한 활황을 보이고 있다”며 “내수경기가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는 국내 제조업체 중에는 철강재의 급격한 상승에 따라 ‘손해보고 장사하는’ 업체들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업체들의 ‘가격인상 러시’는 전자ㆍ자동차 부품 부문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중소기업은 한계상황 "자금난 시달리다 법정관리·줄도산도 중견ㆍ중소 제조업체들이 겪고 있는 경영난은 대단히 심각하다. 세원텔레콤ㆍ텔슨전자 등 대표적 휴대폰 수출기업들은 자금난에 시달리다 최근 법정관리ㆍ화의에 들어갔다. 이들보다 규모가 작은 중소업체들도 줄도산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2~3년 전만 해도 업체당 수억달러의 수출고를 올리던 중견기업들이 휘청거리게 된 것은 수출 주력시장이던 중국에서의 과당경쟁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공급에 따른 채산성 악화 때문. 셋톱박스 세계 2위 업체인 티컴앤디티비로는 종잡을 수 없는 환율이 수출의 발목을 잡는 경우. 환율이 떨어질 때를 대비해 1,140원일 때 환리스크 헤지 옵션거래를 시작했다가 최근 1,170원까지 오르는 바람에 되레 손해를 봤다. 가파른 유가상승으로 제조원가가 뛰는데도 해외 바이어들에게 가격을 올려받기가 쉽지 않은 것도 고민이다. 김영민 사장은 “신제품 출시를 앞당겨 필요 없는 부품을 줄여나감으로써 유가상승에 따른 원가부담을 덜고 있다”며 “환율ㆍ유가 등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일수록 연구개발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동 등지로 시계를 수출해온 한 중견기업은 해외 경쟁업체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수출단가가 낮아져 고민이다. 자구책으로 내수시장 공략에도 나섰지만 연초 목표치의 60%도 달성하지 못했다. OEM 방식으로 시계를 수출하는 영세업체들은 중국으로 생산시설을 옮기거나 수출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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