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국은 박영훈의 완패였다. 이세돌은 박영훈이 큰 진영을 만들기만 하면 풍덩 뛰어들어가 폭파해 버렸다. 두 차례에 걸친 폭파작전이 끝났을 때는 이미 이세돌이 이겨 있었다. 이세돌은 3번기의 첫판을 시원스럽게 이겼다. 딱 한 판을 패하고서 박영훈은 벼랑 끝에 몰리고 말았다. 원래는 삼성화재배 결승도 5번기였다. 잉창치배나 LG배 세계기왕전 역시 5번기였다. 그러다가 삼성화재배가 2001년부터 3번기를 채택했다. 승부의 박진감이라는 면에서 3번기쪽이 훨씬 앞선다는 것이 변경의 이유였다. 2007년에는 LG배도 3번기로 바뀌었다. 달포 전에 박영훈은 GS칼텍스배 프로기전 도전5번기에서 2연패 이후에 3연승을 하여 타이틀을 따낸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삼성화재배는 조건이 다르다. 2연속 패배를 하면 그대로 끝나 버리는 것이다. 대국장인 을지로 삼성화재 본사 3층에는 일찍부터 고수들의 얼굴이 보였다. 주로 TV해설로 정평을 얻은 기사들이었다. 유창혁, 김성룡, 목진석, 조한승 등등. 김지석4단을 비롯한 청소년 기사들도 여럿 나와 있었다. 사이버오로의 생중계 담당은 최철한. 한때 한국랭킹 3위에 올랐던 최철한은 1년 사이에 랭킹이 급속히 내려가더니 2007년 10월에는 6위였고 2008년 1월에는 14위까지 내려갔다. 쌍방이 빠른 속도로 포석을 펼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저께 두어진 제1국과 수순이 똑같다. 복기라도 하듯이 흑17까지는 완벽한 동일형이다. 박영훈이 백18로 두어 여기부터 그저께와 달라졌다. 그때는 참고도의 백1 이하 11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기억력 좋은 독자들은 생생하게 기억하실 것이다. 박영훈은 흑으로 그 포석을 해가지고 패했지만 흑이 유리한 포석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실전보의 백18로 변화를 시도한 것이었다. “철한아. 어젯밤에 영훈이랑 같이 있었지? 뭐 들은 얘기 좀 있니?”(김성룡) “제3국까지 가면 자기가 유리할 것이라고만 그러더군요.”(최철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