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등 급성장·부동산 회복 힘입어<br>성장률 전분기 보다 20% 수직 상승<br>대외의존형 동아시아에 희망 메시지<br> 미국 회복 더뎌 지나친 낙관론은 경계
| 싱가포르 경제가 최근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며 5분기만에 긴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다. 지난 20일 싱가포르 시내에 있는 머라이언(Merlion)상의 입에서 경제의 활력을 상징하듯 힘차게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싱가포르=블룸버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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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개방형 경제 구조 탓에 글로벌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렸던 싱가포르 경제가 최근 놀라운 회복력을 보이며 되살아나고 있다.
올 2ㆍ4분기 싱가포르 경제는 전 분기 대비 20.4%(연율 기준)을 기록, 5분기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다. 지난 1ㆍ4분기 경제 성장률이 -12.7%였음을 감안하면 괄목할만한 성과다. 경제 회복에 고무된 싱가포르 정부는 최근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9%에서 -4%로 상향 조정했다.
싱가포르는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1.85배, 무역은 GDP의 3.5배에 달할 정도로 전형적인 대외의존형 경제. 같은 수출주도형 경제인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 입장에서도 싱가포르 경제의 선전은 좋은 징조로 해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싱가포르가 글로벌 경기 침체의 여파가 예상보다 적고, 경기 회복 국면에서도 여타 국가를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싱가포르의 사례는 동아시아 경제가 글로벌 경제 회복의 엔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하고 있다.
◇ 대외의존형 경제, 되살아나나= '아시아의 허브'로 불리는 싱가포르는 고부가가치 제조업과 금융 등 서비스 산업의 양 날개로 지탱해 왔다. 서울보다 조금 넓은 면적에 인구가 고작 480만에 불과해 애당초 내수에는 기대할 게 없다. 중계무역이 발달하고 수출의 GDP 비중이 60%나 되는 싱가포르 경제가 글로벌 경기 침체로 타격을 받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실제 지난 2005년 이래 매년 7%의 높은 성장률을 구가하던 싱가포르 경제는 지난해 1.1% 성장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싱가포르 경제는 지난해 2ㆍ4분기에 직전분기 대비 -7.7%를 기록한 이후 올 1ㆍ4분기까지 4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지난 1ㆍ4분기 경상수지 흑자폭은 전년 동기의 절반 수준인 59억 싱가포르달러로 급감했고 수출은 30% 감소했다. 실업률은 3% 턱밑까지 올라 두 배로 늘었다. 지난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이후 최악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란 잿빛 전망이 시장을 지배했다.
하지만 싱가포르 경제는 올 2ㆍ4분기에 20.4%나 성장하며 이런 예측을 단박에 뒤집었다. 이는 블룸버그 전문가들이 예상한 13.4%를 훨씬 웃도는 수준으로,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싱가포르 GDP의 25%가량을 담당하는 제조업이 지난 분기 -24.3%에서 -1.5%로 크게 개선된 것이 성장세를 주도했다. 특히 GDP의 5%에 달하는 제약산업이 신종 플루 확산에 따른 투자 급증으로 전 분기 대비 138%나 성장한 것이 큰 힘이 됐다.
리셴룽(李顯龍) 총리는 평소 "제약산업은 물리적인 규모는 작지만, 잠재력과 부가가치가 아주 크다"며 "바로 이런 것이 싱가포르가 지향해야 부문"이라고 강조해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가들이 경기 부양을 위해 무려 2조 달러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한 효과가 싱가포르의 실적 호전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 내수 버팀목 부동산 경기도 '꿈틀' = 해외 대국들의 경기부양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면서 수출 비중이 큰 싱가포르 경제의 내부에서도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이후 침체됐던 부동산 경기도 최근 활기를 띠면서 내수 경기를 떠받치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체 CBRE에 따르면 올 6월 싱가포르의 민간주택 판매량은 전달보다 9%가량 증가한 1,825채를 기록했다. 이는 부동산 경기가 정점에 달했던 지난 2007년 8월보다도 100채 가량 많은 것이다.
올 2ㆍ4분기 민간주택 판매량도 4,714채를 기록, 이미 지난 한 해 동안 판매된 4,264채를 넘어섰다. 6월 주택 신축 물량도 지난 2007년 8월 이래 두 번째로 많은 1,637채를 기록했다.
금융위기의 여파로 건설 프로젝트가 줄줄이 연기되거나 중단되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급속히 안정을 되찾는 분위기다. 현지 부동산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최악의 경기침체가 끝났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고, 부동산 가격도 경제 활황 때보다 저렴해 소비자들의 주택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싱가포르 정부도 내수 경기를 살리기 위해 나름대로 공을 들여 왔다. 정부가 구제금융 명목으로 올 초 투입한 자금 규모만도 205억 싱가포르달러(18조원)에 이른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미 지난해부터 국토의 12%를 차지하는 도로를 더 늘리기 위해 각종 도로공사에 대한 재정투입을 늘려 왔다. 오는 2020년까지 지하철 등 도심 인프라 확충에도 400억 싱가포르달러를 투자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 미국경제 영향 불가피…점진적 회복에 무게= 싱가포르 경제의 눈에 띄는 회복속도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 및 유럽 경제가 최악의 위기국면을 지나 안정을 찾고 있지만 여전히 변수가 많아 자칫 대외 의존도가 높은 싱가포르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싱가포르 경제의 급격한 성장을 도왔던 제약 등 수출업체들의 실적이 앞으로도 계속 좋아지리란 보장은 없다.
특히 해외 수출 비중이 높은 '세계 제1의 경제 대국' 미국 경제의 회복 속도는 싱가포르 경제 성장을 좌우하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경제가 빠르게 안정감을 찾는 모습이지만, ▲부동산 시장 침체 ▲은행의 부실자산 처리 지연 ▲고용 악화 지속 등으로 인한 개인 소비 위축은 '더블 딥(이중 침체)' 우려를 불러 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림흥경( ) 통상산업부 장관이 "선진국 경제의 수입 수요가 여전히 취약해 최근 나타나고 있는 수출호조세가 지속될 지 여부는 불투명하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관광 등 서비스 산업이 맥을 못 추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제조업이 가파른 회복세를 보인 반면 서비스 부문은 2ㆍ4분기에 전분기와 같은 -5.1%의 성장률로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신종플루 확산이 제약 산업의 성장을 유인했지만, 그와는 반대로 관광산업의 위축을 증폭시키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싱가포르 정부도 급격한 회복을 뜻하는 V자형 경기회복보다는 점진적인 경기회복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