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도그마에 빠진 환경정책] <중> 미·중은 늦추는데 한국은 가속페달

'휴지조각' 기후협약 매달린 정부탓에… 국내기업 '탄소 역차별'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지난 5일 인천시 연수구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2014 저탄소 생활 실천 국민대회''에서 저탄소 생활 실천을 호소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온실가스 1·2위 배출국 중·미 "기업보호 우선" 감축엔 무관심
러 불참 결정·캐나다 아예 탈퇴
녹색성장 이슈 선점에만 매몰
'배출권 거래제' 목표 높게 잡아 생산축소 안하면 과징금 낼 판


글로벌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주요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은 온실가스 배출에 있어서도 '강대국'이다.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은 지난 2012년 기준으로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3분의1을 차지하는 90억8,400만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미국은 2005년께 중국에 '1위 배출국'의 자리를 내줬지만 아직도 연간 60억톤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2대 배출국이다. 하지만 온실가스 감축 이슈와 관련, 미국·중국 기업들은 우리나라 기업들보다 느긋하다. 지역 단위로만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고 확실히 보호해야 할 업종은 지켜주는 등 양국 정부가 기업의 발목을 잡지 않기 위해 보호막을 쳐준 덕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가 앞장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도입을 이끌면서 기업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상황이다. 재계에서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어려운데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들보다 온실가스·환경규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 기업을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온실가스 양대 배출국 미중은 정작 감축에 미온적=상식적으로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들이 먼저 행동에 나서야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제12차 5개년 발전계획(2011~2015년)에는 에너지구조 다변화, 에너지 효율성 제고를 통한 간접적인 감축안이 담겼을 뿐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을 직접 규제하는 내용은 없다. 중국은 기후변화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관한 교토의정서가 규정하는 의무감축국에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보다 10배가 넘는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미국은 2001년 합의된 교토의정서 비준을 아예 거부했다. 대신 코네티컷 등 9개 주(州)만 참가하는 지역 단위의 탄소배출권 거래제(RGGI)가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역시 화력발전 부문을 대상으로만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고 있다. 연방정부 차원의 배출권 거래제 도입이 논의된 적은 있지만 관련 법안은 2010년 상원에서 부결됐다.


이밖에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2010년 미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85~90%를 차지하는 8,000여개 대형 발전·산업시설을 대상으로 배출량 보고 프로그램을 의무화했지만 실질적인 감축 규제가 뒤따르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관련기사



◇사실상 휴지 조각된 교토의정서, 한국만 열심=국제사회에서 입김이 센 미국과 중국뿐만이 아니다. 캐나다 역시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2012년 교토의정서 체제에서 탈퇴했고 러시아·뉴질랜드는 오는 2020년까지 연장된 교토의정서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연장된 교토의정서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5%만 규제할 수 있는 불완전한 국제협약으로 전락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교토의정서가 주요국의 불참으로 인해 휴지 조각이 돼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교토의정서 이행에 '지나치게 열심'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교토의정서가 규정하는 의무이행국이 아니지만 2009년 11월 기후변화협약 제15차 총회에서 2020년까지 배출전망치의 30% 감축하는 방안을 '자발적으로' 제시했다.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정과제로 추진한 이명박 정부가 글로벌 이슈를 선도한다는 도그마에 빠져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목표치를 제시한 것이다. 내년부터 실시될 전국적인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불필요하게 앞서나간다는 지적이다. 전국 단위의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했거나 도입 예정인 곳은 뉴질랜드·스위스·카자흐스탄·러시아·터키·우크라이나·브라질·칠레·멕시코·태국뿐이다. 중국은 광둥성과 선전·베이징·상하이 등 2개 성과5개 도시에서만 제한적으로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시범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캐나다도 퀘벡주에서만 배출권 거래제를 운영 중이다.

◇'탄소 역차별' 우려하는 국내 기업들=한국은행은 지난달 '주요국의 탄소 배출권거래제 현황 및 이슈' 보고서에서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국제적 공조체제가 미흡해 일부 국가·기업이 비용 증가, 대외경쟁력 약화 등 역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탄소 역차별'이 곧 현실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례로 정부의 배출권 할당에 따라 석유화학 업계는 15.4%의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해야 하는데 이를 실현할 방법은 생산 축소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한국석유화학협회는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장치 산업의 특성상 추가로 1% 이상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당장 앞으로 3년간 약 7,800억원의 과징금을 물어야 할 판"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경제 환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무리한 제도 도입은 시장 왜곡과 국가 부담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며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력 산업을 보호하고 탄소 저감기술 도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지난해 발전 용량 25㎿ 이상인 신규 화력발전소를 대상으로 탄소배출을 규제하기로 한 '탄소배출량 규제기준'은 천연가스 등 보다 효율적인 에너지원 사용이나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S) 등의 신기술 활용을 촉진한다는 의도가 강하다.

중국도 2020년까지의 탄소 감축 목표를 설정했지만 저탄소 정책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절대적인 탄소 배출 규모보다는 탄소집약도(국내총생산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를 기준으로 삼았다. 우리 정부도 이처럼 환경보호라는 가치에 매몰되기보다 경제성장과 산업 발전도 함께 고려하는 보다 유연한 정책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