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어느 90대 노인의 아리랑 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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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읍네 물레방아는 사시장철 물을 안고 뱅글뱅글 도는데 우리 집에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을 왜 모르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강원도 정선에서 호미 들고 밭을 매던 아낙네의 구성진 가락에 마음이 꽂혔다. 밀양·진도 등 전국을 돌며 아리랑 수집과 연구에 나서 2007년 '한 지리학자의 아리랑 기행', 2009년 영문판 'Arirang, Song of Korea', 2011년 평양에 다녀와 북한 아리랑을 추가해 올 1월 개정판 'Arirang of Korea'를 펴냈다. 지난해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시베리아 한복판이자 한민족의 시원(始原)으로 알려진 세계 최대의 호수 바이칼호에 이르는 3,000km의 1차 아리랑 루트 답사를 마쳤다. 조만간 카자흐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에 뻗쳐 있는 2차 아리랑 답사를 계획하고 있다. 1937년 스탈린 치하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고려인의 한 많은 아리랑을 답사함으로써 한민족 아리랑의 완결편을 출간하기 위해서다.

올해로 91세인 이정면 미국 유타대 명예교수 얘기다. 한국인 지리학 박사 1호인 그는 "2004년까지 40여년간 미국에서 지내며 고국이 그리울 때면 늘 아리랑을 불렀다"며 "시베리아 답사를 통해 아리랑은 남녀 사랑을 넘어 한민족의 대서사시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멀리는 고구려와 신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아리랑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언제나 함께했던 우리네의 삶과 혼, 한이 담긴 민족의 상징이자 정체성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리랑은 워낙 뿌리가 깊고 각 지역마다 형식과 내용이 다양해 남북 통틀어 5,000수가 넘는다고 한다.


이정면 교수, 시베리아까지 아리랑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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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남북이 같이 불러야 할 아리랑에 북은 빠져 있다. 이 교수의 '아리랑 루트'가 북을 건너뛰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야 하는 뼈아픈 이유다. 올해로 광복 70년이 됐건만 세계 유일이자 마지막의 냉전 구도가 계속되며 남북은 따로, 홀로 아리랑이다. 같은 민족이니까 합쳐야 한다는 당위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리랑 루트는 박근혜 대통령이 외교정책이자 국제경제 정책으로 강조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맞닿아 있다. 한반도를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의 해양세력을 연결하는 중심 허브로 키워 한민족 경제의 부흥과 함께 통일의 초석을 다지겠다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그 첫 단추로 유라시아와 대양의 연결점인 북한의 동참이 필요하다. 북한이 빠지면 말 그대로 변죽만 울리다 끝나는 맹탕이 된다.

박 대통령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주창하기 전부터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태평양으로 통하는 북한의 문을 열기 위해 갖은 애를 써왔다. 이른바 중국과 러시아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인 것이다. 실제 중국은 근년에 북한 나진 선봉항구를 활용해 동북 3성의 원자재 등 물품을 수출함으로써 내륙 수송 루트 때보다 물류비용을 3분의1 이하로 줄여놓았다.

박근혜 정부가 벌써 반환점을 돌고 있다. 통일 대박 등 거창한 구호만 외쳤지 남북 관계에서는 뭔가 풀린다는 느낌을 가질 수가 없다. 남과 북의 민중은 아리랑으로 만나려 하는데 위정자들이 명분과 기득권에 집착해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남북의 지도자는 서로를 악마로 만들면서 불신과 대결의 악순환을 만들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언제까지 남한을 미제의 앞잡이 정권으로, 북한을 핵 개발에만 몰두하는 독재 정권으로 삿대질하며 쌈질을 할 것인가.

관계경색 北 빠진 '아리랑루트' 뼈아파

남한은 열린 세계 속에서의 자유 민주사회이고 경제력도 북한보다 수십배나 높다. 북한은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며 소리소문없이 처형당하는, 지구촌에서 고립된, 가난한 전체주의 사회다. 전체주의는 민중에 대해 얼마든지 여론 조작이 가능하고 오히려 외부의 적을 만듦으로써 체제 결속을 다질 수 있다. 성숙한 남한이 먼저 아량을 보여야 한다. 한민족이 아리랑으로 정서와 애환을 소통했듯 남북의 민중이 만나 서로를 알게 하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사전 답사 격으로 민관으로 구성된 유라시아 친선특급 원정대가 27일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종착역인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200여명으로 구성된 이 원정대에 평양에서 온 2명이 있다. 미국 국적의 이병무 평양 과학기술대 치과대학원장과 얀 야노프스키 북한주재 독일 외교관이다. 그들이 전하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먼저 통일부터 얘기하지 마라. 어떠한 정세에도 남북은 만나 대화하면서 신뢰를 쌓고 다음 단계로 점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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