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치와 경제의 상생/차동세 한국개발연구원장(송현칼럼)

지금 우리 경제는 선진국의 문턱에서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지표상으로는 성장, 국제수지 등이 개선되고 있고 산업생산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계의 위기감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위기감의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기아 등 대기업 부도사태와 이에 따른 금융불안이 가장 크겠지만 몇가지 근본요인들이 배경에 깔려 있다. 우선 고비용과 저효율로 인한 경쟁력 상실이 가장 심각한 구조적 문제다. 나라 밖으로부터는 무한경쟁이 밀어닥치고 있는데 나라 안에서는 그동안 생산성을 크게 초과하는 고임금 구조가 정착되었다. 1인당 소득수준에 의해 나타나는 생산성수준은 일본이나 미국의 3분의1 이하이면서도 임금수준은 60∼80%에 육박하고 있다. 고임금과 함께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는 두번째 고비용 요인은 고금리다. 우리나라의 현 금리수준은 경쟁국의 2∼5배나 된다. 임금과 금리가 높은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현재의 고임금과 고금리 수준으로는 결코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되살릴 수 없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충돌, 즉 정치와 경제의 충돌도 심각한 문제다. 자유민주주의체제하에서는 모든 사람이 정치적으로 평등하다. 사람의 능력과는 관계없이 누구나 한 표씩만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시장경제는 필연적으로 능력에 따라 경제적인 불평등을 창조한다. 극단적으로 자유경쟁에 맡겨두면 능력이 가장 많은 사람이 경제적 부를 독차지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는 다수의 표에 더 큰 비중을 둘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형평의식이 강할 뿐만 아니라 축재는 부정한 방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의식이 존재하고 있어 항상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여왔다. 그래서 오늘과 같은 글로벌경쟁시대에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기업에 대한 규제정책이 존재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언제나 정치권력과 관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인의 불안감과 좌절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지금 우리나라 기업인들은 대단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동안 고도성장의 과정에서 무리하게 사업확장을 하였고, 경영도 방만하게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바로 코앞에까지 다가온 무한경쟁의 파고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어버렸다. 정부는 구조개혁의 방향으로 자유시장 경제질서와 경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경쟁에서 이기는 기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쓰러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정부를 보고 불만에 차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장경제의 기관차인 기업의 활력을 높이고 이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근로자 등 각 경제주체들이 사고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먼저 정부는 시장경제의 틀, 특히 정부의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정치적 선택과 결단을 필요로 한다. 진정으로 정부는 형평에 대한 욕구를 일부 무시하고라도 효율을 중시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의 형평에 대한 정서를 고려해 어느 정도 효율을 희생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선진국식 자유시장경제질서를 만들 것인지, 어정쩡한 한국식 「시장경제」를 고집할 것인지를 명확히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국민의 정서를 고려할 때 정치권의 이해관계와 자유시장경제질서는 항상 상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기업들도 사고를 혁신해야 한다. 기업은 현실에 대한 불만토로라는 소극적 방법을 쓸 것이 아니라 자유시장경제질서를 창달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찾아내는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대기업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시각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제 우리 기업은 자유시장경제체제를 스스로 지켜야 하는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스스로 자신의 환경을 개척해야 하는데도 아직도 누군가가 나서 자유로운 기업환경을 조성해주기를 기대해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경쟁질서를 지키며, 긴 안목을 가지고 사회적 투자를 보다 활성화시키는 등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적극 전개해야 할 것이다. 기업에 대한 신뢰 없는 자유시장경제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근로자들도 이제 선택은 실업이냐 생산성 향상이냐이지, 임금을 얼마나 더 받을 것이냐가 아니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적당히 놀면서 노조를 통해, 혹은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높은 임금인상을 보장받겠다는 것은 환상이다. 기업이 망하면 근로자는 실업자가 된다. 지금 우리 기업들이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면 그 대가는 실업이라는 뼈아픈 형태로 지불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 정치와 경제의 상생원리를 찾아내자.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둘다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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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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