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신문 그리고 폐지줍는 노인<종합편>]그 많던 신문 줍던 노인은 어디로 갔을까

무료신문 몰락 맞춰 지하철서 자취 감춘 노인들

뉴스 더 이상 신문으로 소비하지 않는 시대 도래

여전히 뭔가를 줍고 있는 노인들...삶의 곤궁 나아진 것 없어

수년 전 아침 출근길 지하철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던 ‘낯익은’ 이들이 있었다. 자기 덩치만큼 쌓인 신문 더미를 한 아름 안은 채 또 다른 먹을거리를 줍기 위해 지하철 선반 이곳저곳을 뒤지던 노인들. 거친 손, 굽은 허리 그러나 발만은 쉴 새 없이 지하철 곳곳을 헤매던, 그 많던 신문 줍던 노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 “예전엔 참 쉽게 모을 수 있었던 게 신문이었지”=이상우(84) 할아버지는 쉰여덟 살의 나이로 퇴직하기 전까지 25년간 시외버스를 몰았다. 배움이 얕은 탓에 퇴직 후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고 공사판을 전전하다가 4년 전부터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처음 폐지를 줍기 위해 찾은 곳은 집 근처의 청량리역. 당시만 해도 지하철 승객들이 곳곳에 내다 버린 신문 쪼가리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고, 당시 1kg당 150원 정도 하던 폐신문지는 쏠쏠한 하루 벌이가 됐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지하철 훑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더이상 신문을 보지 않기 시작했고, 그래서 폐지를 모으는 게 갈수록 어려워졌다. 할아버지가 요즘 지하철 대신 주로 들르는 곳은 서울역과 시청 부근의 작은 식당들이다. 할아버지는 “예전엔 쉽게 모을 수 있었던 게 신문이었는데 요샌 가정집을 돌아다녀도 찾기가 어렵다”며 “가격도 뚝 떨어져 지금은 1kg당 70원 밖에 쳐주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 무료신문 몰락 맞춰 지하철서 자취 감춘 노인들= 할아버지가 지하철에 잠시 발을 들였던 2011년은 무료신문의 위기가 시작된 시점과 맞물린다. 2002년 5월 ‘메트로’가 국내에 첫 발을 들인 이래 급격한 성장세를 구가하던 무료신문시장의 매출액은 2011년부터 급감하기 시작, 지난해까지 무려 4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금융감독원에 재무제표를 공시한 무료신문(더데일리포커스·메트로) 두 곳의 지난해 매출액 감소율은 전년 대비 76.6%에 달했고, 2013년부터는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때 아시아 국가 가운데 발행 부수가 가장 많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던 무료신문의 몰락은 폐지 줍는 노인들을 지하철 밖으로 내몬 결정적 계기가 됐다. 서울 충정로 부근에서 재활용자원수집소(고물상)를 운영하는 최모 대표(49세·남)는 “지하철역에서 무료신문을 한창 나눠줬을 땐 3톤 차량이 5일이면 꽉 찼다”며 “지금은 같은 분량을 채우는 데 일주일 내진 열흘 정도가 걸린다”고 전했다.

◇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신문과 폐지 줍는 노인=신문 산업과 폐지 줍는 노인, 그리고 폐지 산업은 그 흥망성쇠를 함께 해온 불가분의 관계다. 무료신문의 쇠퇴가 폐지 줍는 노인의 위기를 불러왔다면 과거 신문업계에서 벌어졌던 무리한 증면 경쟁, 부수 확장을 위한 무분별한 무가지 살포 등은 폐지 산업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언론사간 발행 부수 뻥튀기가 극심했던 1992년 ‘펄프지류 통계월보’ 2월호에 따르면 당시 독자 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폐지로 직행한 신문이 하루에만 290여만 부에 달했다. 당시 한 신문 지국장이 2.5톤 트럭 7대를 가지고 고지(폐신문지) 수입을 주업으로, 지국 운영을 부업으로 삼는 경우도 있었다는 보도도 있다.

신문업계의 출혈적 경쟁은 폐신문지 가격의 급등을 불렀다. 중간 고물상들이 치르는 가격을 기준으로 1975년 1kg당 20~45원 정도 하던 폐신문지 가격은 1994년 최고 115원까지 뛴다. 물가 상승분을 반영한다면 약 20년 전 폐신문지 값이 지금보다 약 2~3배 가량 높았던 셈이다. 급기야 1995년 6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신문사간 과당 경쟁으로 지난 한 해 신문용지 수입액이 3억5,000만 달러에 달했다”며 “상당수 신문사들이 20%에서 최고 50%까지를 무가지로 발행하면서 이를 전부 쓰레기로 버리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 디지털미디어의 홍수= 무가지 및 무료신문의 출혈 경쟁이 막을 내리게 된 건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2010년 이후다. 뉴스를 더 이상 신문으로 소비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디지털미디어가 신문의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한 것. 이상기 부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015 신문사 재무분석’ 보고서를 통해 “주로 출퇴근길 대중교통에서 소비가 이뤄져 온 무료신문의 몰락은 구독자들이 스마트폰으로 갈아탔기 때문”이라며 “스마트폰 확산으로 가장 큰 치명타를 입은 신문 업종이 무료신문”이라고 분석했다. 신문 줍던 노인들이 길을 잃었던 시기도 그 즈음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종이 신문 구독률은 2002년 52.9%에서 2013년 20.4%로 대폭 떨어졌다. 해외에서도 사정은 비슷한데 글로벌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의 올 3월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가운데 10%는 트위터를 통해, 41%는 페이스북을 통해 뉴스를 통해 접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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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해외 유수 언론들은 ‘디지털 퍼스트’, 즉 종이신문 대신 디지털을 콘텐츠 생산 및 유통 플랫폼의 중심으로 삼겠다는 선언을 일찌감치 내놨다. 지난 2011년 영국 가디언의 ‘디지털 퍼스트’ 전략 발표, 작년 5월 공개된 뉴욕타임스의 혁신 보고서 등이 대표적 사례다. 지난 5월 국제뉴스미디어협회(INMA)에 참석한 500여개 언론사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향후 언론사가 추구해야 할 최우선 가치’를 묻는 질문에 ‘미래의 디지털 성장’, ‘모바일 개발’ 등으로 답한 비율(복수 응답)은 각각 94%, 93%를 차지했다. 반면 ‘새로운 인쇄·출판 모델’ 등 지면 경쟁력 강화를 우선순위로 삼겠다는 응답은 39%로 가장 낮았다.

국내 언론도 이 같은 시대적 분위기에 힘입어 비주얼 저널리즘을 대폭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서울경제신문도 이달 디지털 전용 브랜드 ‘서울경제썸’을 내놓고, 페이스북·인스타그램·카카오스토리 및 다음TV팟·네이버 캐스트 등 SNS·포털에 카드뉴스·동영상뉴스·인포그래픽뉴스 등 다양한 비주얼 콘텐츠를 생산·유통시키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국내 민간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지면 외 콘텐츠라는 형식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긍정적”이라며 “내용의 깊이를 담보하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게 향후 숙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많던 신문 줍던 노인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줍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등장, 이에 맞춰 지하철에서 사라져 버린 ‘그 많던 신문 줍던 노인은 어디로 갔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노인들은 여전히 뭔가를 줍고 있고, 이들의 곤궁은 과거에 비해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자원재활용연대에 따르면 국내 고물상은 전국적으로 약 7만 여 곳. 고물상 한 곳을 운영키 위해 약 25명 정도의 폐지 수집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에 폐지를 줍는 인력은 약 175만 명 가량으로 추산된다. 다만 이들의 공식 통계치 산출은 아직 이뤄진 바가 없다. 이들의 주거지가 일정치 않고 생활 환경도 불안정한 탓에 숫자를 집계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2월부터 7개월간 생명나눔재단이 김해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폐지 줍는 노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조사 대상자(199명) 가운데 폐지 줍는 활동을 통한 월평균 수입액이 5만원 이하인 경우가 전체의 52.8%(76명)에 달했다. 노령연금 등 국가 보조금이나 자녀들로부터 용돈을 받지 못하면 생계를 영위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이들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주거 불안 및 불량한 건강 상태다. 조사 대상자 가운데 월세로 살아가는 비율이 45.2%에 달했고, 이 때문에 생활비 지출 중 월세가 가장 많이 들어간다고 답한 이도 40.7%나 됐다. ‘건강이 좋지 못한 편’이라고 답한 이가 전체의 60.3%에 달했으나 지난 일주일새 병원을 들른 횟수는 0~1회가 대부분(75.9%)을 차지했다. 나눔재단 측은 “노인들의 우울 정도를 측정한 결과 위험 수준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은 노인이 절반을 넘었다”고 밝혔다.

◇폐업 위기 몰린 고물상들= 폐지 줍는 노인들의 주 수익원인 고물상들은 최근 경영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갈수록 확산되는 님비 현상(기피 시설 반대)과 더불어 정부의 규제 압박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탓이다. 이 때문에 폐지를 비롯한 재활용품의 가격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고, 폐지줍는 노인들의 수입 역시 개선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3년 고물상들이 재활용 폐자원을 사들이던 비용의 세금 공제 비율을 종전 5.66%에서 지난해 4.76%로 줄였고, 내년부턴 2.91%로 더욱 낮출 예정이다. 대선 공약이었던 ‘지하경제 양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고물상의 세부담을 늘린 것. 여기에 ‘신고제→ 허가제’로의 전환, 입지 규제 등 때문에 고물상들이 점점 더 도심 외곽으로 밀려나면서 폐지 노인들의 접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가격 결정권을 쥐고 있는 폐지 압축장 및 제지 회사의 가격 후려치기·담합 등 관련 산업의 낡은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점도 고물상·폐지 노인들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봉주헌 자원재활용연대 의장은 “고물상들의 세 부담 증가가 폐지 노인들의 빈 주머니를 터는 격이라는 것을 정부도 인정하고 있으나 이달 초 나온 세법개정안에서 이 문제가 또 다시 외면당했다”며 “ 제지업체가 일방적으로 가격을 하부에 통보하는 현 방식 대신 협의체 구성 등 중립적 기구를 마련해 재활용품 가격의 객관성을 높이는 제도의 도입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침체로 폐신문지 가격은 당시 1kg당 260원대에서 70원대까지 급락했고, 현재도 비슷한 수준의 가격이 유지되고 있다. 서울 잠원동의 한 고물상 대표는 “작년엔 세월호, 올해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등으로 우리로선 두 번의 카운터펀치를 연달아 맞은 셈이 됐다”며 “폐지 산업은 경기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어 올해 매출은 더욱 줄어들 것 같다”고 전했다.

, 양아라·정수현·박송이·백상진 인턴기자


유병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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