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대출규모가 3,000억원을 넘어 은행과 저축은행들의 대출심사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KT 자회사라는 이름에 끌려 별다른 심의나 추가확인 작업 없이 대출을 해줬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특히 금융사별로 손실규모가 최소 수백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책임소재를 놓고 KT ENS와 중간에 신용보강을 해준 증권사, 금융사간 대규모 소송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금윰감독당국에 따르면 하나와 국민, 농협 등 3개 시중은행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2,100억원 대의 대출을 해줬다. 하나가 1,624억원으로 가장 많고 국민은행은 296억원, 농협은 296억원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저축은행도 규모가 큰데 BS금융저축은행이 235억원, 일본계 OSB저축은행(옛 오릭스저축은행)이 150억원, 현대그룹 계열의 현대저축은행이 100억원 등 10곳에 800억원의 대출이 이뤄졌다. 특히 매각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현대저축은행이 포함돼 뼈아프다.
대출과정은 KT 자회사라는 이름 때문에 손쉬웠던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N사와 KT ENS 직원이 짜고 가공의 매출채권을 만들어 특수목적법인(SPC)에 넘기고 SPC에서는 이를 담보로 금융사에서 대출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KT ENS가 매출채권을 SPC로 넘겨도 좋다는 법인인감까지 찍혀 있었다.
하지만 이는 모조리 사기였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법인인감의 경우 실제 인감과 다르다”고 했다. 금융사들의 책임논란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이다. 그만큼 실제 확인작업에 소홀했다는 얘기다.
현재 하나은행은 대출에 증권사의 지급보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의 관계자는 “하나 측에서는 자신들의 대출의 경우 증권사에서 지급보증을 해줬다고 알려왔다”고 전했다. 지급보증이 있을 경우 대출에 문제가 생기면 증권사에서 대신 물어줘야 한다.
그러나 대출전체가 사기로 규정되고 있는 만큼 증권사에서도 지급의무가 없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대출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증권사 입장에서도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금감원이 파악해본 바로는 하나를 제외한 다른 은행들과 저축은행들은 지금까지는 지급보증이 없다. 대출자금 회수가 안 되면 모조리 부실이 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매출채권 대출의 경우 위조나 사기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면밀한 확인작업이 필수”라며 “KT라는 이름만 보고 이에 대한 확인 작업을 덜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금융사들 이외에 A저축은행 등 다른 곳에서도 KT ENS 매출채권과 관련한 대출신청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는 대출사기 행각이 더 광범위하게 이뤄졌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KT ENS 측에서도 매출채권 자체를 부정하고 있어 법정에서 책임 문제를 가려야 할 가능성이 높다. ENS 측은 매출채권이 조작된 것인 만큼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ENS는 이날 “금융회사에서 주장하는 매출 채권을 발생시킨 적이 없으며 지급보증한 사실도 없다”며 “(이번 사건을)직원 개인 행위로 추정하나 대출 관련 서류를 아직 받지 못해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1차적 차주인 SPC가 돈을 갚지 못하면 매출채권을 근거로 ENS에 대지급을 요구해야 하는데 ENS가 돈을 주지 않으면 대출금을 모두 날리게 된다.
금감원의 관계자는 “저축은행 등 일부 금융사에서 KT ENS 등의 직원을 검찰에 고발해 수사당국에서 수사를 하는 것으로 안다”며 “부당 대출금액의 정확한 사용처와 향후 금융사의 부실 예상규모 등은 추가로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