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혁의 국제금융시장] 10<끝>. 작고 강한 시스템
규제감독 투명해야 시장이 산다
은행노조가 사상 첫 파업을 벌였던 지난해 7월. 정부와 금융노조는 '국무총리 훈령' 이라는 희한한 형태로 은행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합의문을 발표했다.
노조측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관치금융'에 대해 정부측이 간접적인 시인과 함께 이를 막을 제도적 장치를 마련키로 약속한 것이다.
얽히고 설킨 금융감독기관들 속에서 관치금융에 허덕여온 금융회사들로선 이때만해도 어렴풋이나마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6개월여가 지난 지금 감독기관의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한 규제와 감독은 전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늘고 있다.
거기다 '옥상옥(屋上屋)'이란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을 만큼 금융감독시스템은 너무 복잡하다 못해 어지러울 정도다.
재경부ㆍ한국은행ㆍ금감위ㆍ금감원ㆍ예금보험공사ㆍ자산관리공사 등 금융회사에 대한 관리감독이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기관들만 무려 6곳. 국책은행이나 정부출자기관들의 경우 감사원 감사까지 받아야 하고,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 사법당국 등으로부터 수시로 받는 조사도 끊이질 않는다.
"일년내내 감사나 조사를 받다가 시간을 다 보낸다"는 불평도 괜한 소리가 아니다.
복잡하기만한 금융감독시스템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감독행태가 전혀 시장지향적이지 않다는데 있다.
투명한 금융시장은 투명한 감독과 이를 바탕으로 한 투명한 경영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이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최근 금융감독조직 개편을 둘러싼 감독기관간 이전투구에 대해 피감독자인 금융회사들은 냉소를 보내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감독기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팽패해 있기 때문이다. '막강 금감원'이니 '막강 예금보험공사'니 하면서 이리저리 감독권을 뗐다 붙였다 해봤자 감독받는 기관만 바뀔 뿐 별로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밉고 못믿을 시어머니인데 둘이면 어떻고 셋이면 어떠냐는 식이다.
실제로 최근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 금융회사들로선 그야말로 층층시하가 우려될 만도 하다.
금융회사에 대한 기존의 각종 예금보험기구를 통합해 지난 98년4월 탄생한 이후 금감위와 더불어 금융구조개혁을 선도해 온 예금보험공사는 최근 또 하나의 금융권력기구로 부상하고 있다.
예보는 특히 예금보호는 물론 부실금융회사 처리지원, 금융회사 인수합병에 따르는 자금지원,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에 이르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금감위의 적기시정조치 권한 가운데 일부를 이관받는 방안까지 검토되는 등 갈수록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과거 은감원을 금감원에 떼어 준 한국은행도 은행에 대한 단독검사권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또 금감위와 금감원은 아예 통합돼 민관합동 조직으로 개편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그러나 금융감독시스템이 새로 거듭나려면 조직형태의 변화에 앞서 정보공유 등 투명성 강화와 권한과 책임을 대폭 이양하는 자율규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더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례로 한은에 대한 단독 또는 공동검사권 부여나 예보의 권한강화 역시 일부 감독기관만이 정보를 독점하지 않고 서로 공유하게 되면 상당부문 해소될 수 있다. '너희가 정보를 안 주니까 우리가 독자적으로라도 조사를 해야겠다'는 식의 발상은 결국 피감독기관들만 피곤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감독기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마저 무너지면 시장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며 "투명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행 감독방식이 획기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시스템을 통해 주기적으로 면밀하게 시장을 감시하되 권한과 책임을 과감하게 하부로 이양해 불필요한 감독과 부당한 지시, 압력 등을 일체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독기관의 지시는 꼭 문서로 받아야 한다'느니, '부당하거나 향후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지시사항은 녹음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이 시장에서 사라질 때 투명한 감독과 투명한 시장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진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