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埈秀 정경부기자
『과거는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진솔하게 받아들일 때 새로운 한·일관계가 열리게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시대적 요청에 걸맞는 동반자 관계의 구축을 통해 21세기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대장정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일본 천황주최 만찬 답사)
『한국인과 일본인은 이제 꿈을 공유해야 합니다. 감정적 앙금이나 민족적 편견이 동반자 관계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두 나라는 새로운 자세, 새로운 비전으로 새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합니다』(일본국회 연설)
『한국은 정부의 지시와 통제를 배제하고 민간의 자율과 창의가 보장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대외개방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머지않아 한국은 「기업하기 매우 편안한 나라」로 변모할 것입니다』 (일본 경제단체 공동주최 오찬 연설)
지금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 중이어서 대부분 독자들은 金대통령의 연설이겠거니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위 발언들은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이 지난 94년 3월 방일(訪日)때 했던 말들이다.
굳이 독자 여러분들은 헷갈리게 하며 金전대통령의 연설을 꺼낸 이유는 한·일 관계에선 말보다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일본의 사과를 받아냈다며 자랑하고, 한·일 양국이 우호협력 관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되레 퇴보하는 사례가 잦았다.
한·일 두 나라는 20세기들어 영욕(塋辱)이 엇갈렸지만 세기말에 이르러 유례없는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겪고 있다. 두 나라가 오욕과 족쇄의 과거사를 떨쳐버려야 할 필요성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양국이 진정한 동반자로서 선린관계를 구축하려면 이제 말잔치를 그만 두고 실천에 나서야 한다.
다음 대통령(내각제가 되어서 총리가 될 지 알 수 없지만)이 일본을 방문할 때는 전혀 다른 만찬사와 연설문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도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