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2일] <1205> 간호사 서독 파견


1966년 10월2일 김포공항. 눈물의 환송식 속에 간호사 251명이 서독행 여객기에 올랐다. 서독 각 지역으로 퍼진 한국 간호사들은 치매환자 돌보기에서 시신 닦기까지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았다. 20대 초반의 꽃다운 나이에 이들은 왜 이역만리에서 고생했을까. 못살고 굶주려서다. 파독 간호사들의 초임은 미화로 환산해 110달러. 원화로 2만8,000원이었지만 당시 서울시내 교사 봉급 1만5,000원보다 많았다. 간호사들이 떠나기 3년 전부터는 광부들이 대거 서독으로 들어갔다. 서독이 해외 노동인력을 불러들인 이유는 ‘라인강의 기적’으로 전후 경제복구에 성공해 호황가도를 달리며 노동력 부족에 시달렸기 때문. 수많은 나라의 노동자들이 모인 서독에서 한국인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법정 노동시간인 하루 8시간보다 많은 12시간 동안 일하면서도 잔업을 신청하는 한국인을 보며 독일인들은 혀를 내둘렀다. 광부와 간호사들은 몸이 부서져라 일하면서도 봉급의 대부분을 고국으로 보내 식구를 먹여 살리고 동생들을 공부시켰다. 경제개발에 투입할 외화가 없어 이들의 봉급을 담보로 서독에서 경제차관 1억5,000만마르크를 빌렸다는 설은 최근 국가 진실ㆍ화해위로부터 ‘근거 없다’는 판명을 받았지만 파독 간호사 1만226명과 광부 7,936명의 피와 땀이 밴 외화자금이 경제건설의 밑거름이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작 이들에게 조국이 해준 것은 무엇일까. 비슷한 시기에 독일에 노동자를 파송했던 나라들이 독일에 기념관이나 센터를 건립하는 것과 달리 광부와 간호사 출신 교민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조차 없는 실정이다. 과거에의 망각은 현재를 무감각하게 만든다.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업종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에게 한국은 강퍅하기 짝이 없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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