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출범 이후 정부와 재계는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라는 목표에는 인식을 같이 했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평행선을 달려 왔다.
정부는 수도권 규제완화나 투자활성화를 위한 각종 세제혜택 등을 들어 "어느정부 못지 않게 투자촉진을 위해 대기업들의 요구사항을 정책에 적극 반영했다"고밝히고 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개별적인 애로사항의 해결보다는 제도적 개선을 통해 예측가능한 경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으로 기업투자를 활성화하는 길"이라고지적하면서 아쉬움을 나타냈다.
대기업들이 '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투자 저해'의 요인이 된다고 주장하는정책은 참여정부가 내세운 재벌정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배.소유구조 투명화,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출자총액 제한 등이다.
정부는 먼저 '시장개혁 로드맵'을 반영한 공정거래법 개정 등을 통해 총수가 소수의 지분으로 '황제경영의 전횡'을 휘두르는 것을 막기 위해 소유-지배의 괴리도축소와 그룹 구조조정본부 해체 또는 축소를 압박해 왔다.
정부는 이와 함께 계열사 자금, 특히 고객의 돈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계열사자산으로 총수가 그룹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과 산업을 엄격히분리키로 하고 이를 위해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과 공정거래법의 관련 규정을강화했거나 강화를 추진중이다.
정부는 "재벌그룹 총수가 소유지분에 걸맞은 지배권한을 행사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체제가 확립돼야 하며 금융계열사의 자금이나 계열사간 순환출자 등을 통해 과도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산업구조개선법을 어기고 비금융계열사 지분 5% 이상을 보유하고있는 삼성생명과 삼성카드 등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해 초과보유 지분의 처리방안을분명히 규정하기 위해 관련법 개정을 추진중이다.
금산법 개정뿐만 아니라 금융지주회사법의 개정조항 역시 삼성에버랜드를 금융지주회사로 규정함으로써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금산분리 및 지배구조 투명화 정책이 사실상 삼성의 지배구조 해체 또는 개선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정부는 또한 '투명하고 책임있는' 지배구조의 모범으로 지주회사 체제를 적극권유하는 한편 사외이사의 수, 감사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재계는 "정답이 없는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특정한 방안을 정부 정책으로 채택해 기업에 압박을 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상무는 "소유.지배구조의 개선이나 금산분리를 국가정책으로 채택한 나라는 거의 없다"면서 "대기업의 과도한 문어발식 확장이나 불공정거래 등에 대해서는 규제해야겠지만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소유구조 문제는 기업의자율에 맡기되 문제점이 있을 경우 사후규제하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상무는 "정부가 지배구조과 관련해 자주 지적하는 그룹 구조조정본부만 해도한정된 자원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한국의 현실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의 전신인 비서실이 없었다면 반도체 사업 진출이 가능했겠는가"고 반문했다.
재계는 특히 금산법, 공정거래법 등으로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가 취약해진반면 외국의 투기자본들은 자유롭게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추진할 수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소버린과 경영권 분쟁을 겪었던 SK그룹의 한 임원은 "기업이 경영권에 위협을받게 되면 다른 모든 업무는 뒷전으로 미룬채 이 문제에만 골몰하게 될 수밖에 없다"면서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이런 일에 고민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기업애로 해소'의 사례로 지적한 수도권 규제완화나 '10대 성장동력 산업'에 대한 출자총액제한 예외 인정 등 정책에 대해서도 재계는 "개별적인 사안에관해 애로를 해소해주는 정책으로는 기업들이 느끼는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없다"면서 "장기 예측이 가능하도록 제도적으로 문제를 개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밝혔다.
재계는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의 임기 만료와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의 시한종료에 따라 출자총액제한과 지주회사 전환요건 등에 관한 정책의 완화를 기대하고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 내에서는 "재벌개혁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된다"는 기류도여전해 참여정부 임기말 정부와 재계가 그동안의 엇박자를 해소할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