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의 핵 개발 대부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1986~93년 사이 북한에 핵 기술을 유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2일 알려지면서 북 핵 문제 해결 국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북한이 칸 박사로부터 입수한 핵 기술이 무엇인지는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않았다. 그러나 정황상 고농축우라늄(HEU) 핵 개발 기술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경우 북 핵 사찰과 폐기의 대상에 HEU 프로그램을 포함해야 한다는 미국 주장이 상당히 힘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일관되게 HEU 핵 개발 의혹을 부인해 온 북한은 수세에 몰릴 수 밖에 없다.
일단 칸 박사의 진술이 HEU 핵 기술 개발에 관련된 것이라면 북한의 HEU 개발은 최대 80년대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한미 정보 당국은 그 동안 북한이 97~98년 파키스탄과 미사일ㆍHEU핵심 장비를 맞교환하면서 HEU 핵 개발을 본격화 했다고 파악해 왔다.
무엇보다 북한의 HEU 핵 개발 시도의 첫 구체적 증거가 될 수 있다. 한미 정보당국은 지난해 4월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북한 선박에서 HEU 핵 개발에 이용되는 고강도 알루미늄 22톤을 압수한 것을 HEU 개발의 증거로 들었었다. 그러나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만큼 증거로는 불충분하다는 반론이 있었다.
칸 박사의 진술과 최근 한미간의 미묘한 입장 변화를 연결시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파키스탄 당국자에 따르면 칸 박사가 이 같은 증언을 한 것은 지난달 하순께. 미국이 북한에 HEU 핵 의혹을 포함한 리비아식 선 핵 폐기 선언을 압박하기 시작한 시기와 비슷하다.
우리 정부도 지난달 말 한미일 워싱턴 협의를 마친 뒤 북한의 `핵 동결 대 상응조치` 논의 입장에서 미국에 동조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당분간 HEU 핵 개발 의혹은 미국의 억지라는 입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김계관 부상은 지난달 초 미국 민간ㆍ의회방북단을 “핵 억지력으로 플루토늄의 길을 택했으며 HEU 시설, 장비, 과학자는 없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의 한 당국자는 “칸 박사의 진술 내용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HEU의 모호성도 분명히 해소되어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인 만큼 북 핵 6자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시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안준현 기자 dejavu@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