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카다피 비참한 최후 “고향서 생포후 사망”

42년간 리비아를 철권통치한 무아마르 카다피 전 국가원수가 고향 시르테에서 생포된 뒤 사망하며 70년의 삶을 끝마쳤다. 지난 2월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일어난 지 8개월 만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저항해온 리비아 국민들은 독재자의 죽음과 내전 종식에 환호했다. 20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카다피는 고향인 시르테에서 국가과도위원회(NTC)가 이끄는 반군의 공격을 받아 생포됐다. 카다피는 생포 당시 머리와 다리 등에 심한 부상을 입었으며 병원으로 이송 도중 사망했다. 생포 당시 카키색 유니폼을 입은 채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있었다. 카다피의 시신은 보안상 미수라타의 비밀 지역에 보관되고 있다. 카다피 사망에 이어 그의 네 번째 아들 무타심 카다피도 시르테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리비아 국민들은 카다피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반군 깃발을 흔들며 환호했고 군인들은 하늘에 총을 쏘면서 2월부터 이어져온 내전 종식을 자축했다. 카다피가 반군에 생포된 것은 8월 반군이 수도 트리폴리를 점령한 후 약 두 달 만이다. 카다피는 NTC가 트리폴리를 함락하자 자신의 고향 시르테로 거처를 옮긴 후 정규군과 용병들을 모집해 NTC와 최후의 결사항전을 벌여왔다. 하지만 10월부터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온 과도정보군의 포위망을 빠져나오지 못해 고향인 시르테에서 체포돼 영욕의 삶을 마쳤다. 카다피는 시르테의 참호에서 호위군과 함께 은신하고 있던 중 발견됐다. 과도정부군과의 치열한 교전으로 이미 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카다피는 체포 직전 과도정부군을 향해 “쏘지 말라”고 외치기도 했다. 체포 당시 포착된 사진에는 얼굴에 피를 흘리며 허공을 응시하는 카다피의 모습이 생생히 나타났다. 카다피는 끝까지 목숨을 부지하려 했으나 결국 세상을 떠났고 생포 뒤 그에 대한 재판을 열려 했던 과도정부의 계획도 무산됐다. 카다피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세상의 영광은 이렇게 지나가는구나”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우리는 리비아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란다”며 “모든 세력이 리비아 향후 권력에 대해 합의에 도달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빅토리아 눌런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카다피의 생포나 사망에 관한 언론보도를 확인할 수 없다”며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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