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 끓는 물속 개구리, 죽기 각오하고 개혁 나서야
합계출산율 1.1명으로는 내수활성화 말조차 못꺼내
대학과정 단축 등 교육개혁, 인구절벽문제 풀 핵심 열쇠
"노동개혁外 대안은 없다"… 대처식 'TINA리더십' 절실
2·4분기 성장률(0.3%, 직전 분기 대비)이 발표된 다음날인 지난달 24일. 서울경제신문과 창간 55주년 특별 인터뷰를 가진 박재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장(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성장률 쇼크를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우리 경제의 단기 리스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뜻밖의 진단을 내렸다. 성장률이 기대치보다 낮아져 저성장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당장 우리 경제가 경착륙을 한다든지 외환·금융위기 같은 시장 경색으로 인한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다. 박 원장은 대신 "우리 경제는 끓는 물 속의 개구리와 같은 신세"라며 "구조적으로 서서히 진행되는 중장기 리스크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너무 빠른 속도의 저출산·고령화, 혁신과는 거리가 먼 정부와 경제·사회 시스템, 고갈된 기업가정신, 북한 등 4가지를 대표적인 중장기 리스크로 제시했다. 개구리가 물이 서서히 데워지는 것을 간과하다 죽음을 맞듯이 우리 경제도 이 같은 구조적 문제를 등한시하다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 원장은 "내일 지구가 망해도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심정으로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5년 단임제, 단명하는 장관 등으로 당국자들이 당장 성과를 내는 정책만 펼 수밖에 없고 2·4분기 충격의 경제 성적표가 발등에 떨어진 불같이 보이겠지만 멀리 보는 자세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박 원장은 희망의 메시지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원래 9부 능선에서 10부로 넘어가는 '깔딱고개'가 힘들다. 관(官) 주도의 성장정책이 아닌 혁신을 장려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우리는 저력이 있다. 이순신 장군의 말처럼 죽기를 각오하면 해낼 수 있을 것"이라 힘주어 말했다.
박 원장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한 것은 역시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절벽'이었다. 그는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 1.1명으로는 내수 활성화는 논의하기조차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저출산의 근본 원인을 취업시기가 늦어지는 것에서 찾았다. 직장을 잡는 시기가 늦다 보니 결혼도 미루고 아이를 아예 안 낳거나 낳아도 한 명만 낳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는 의미다.
박 원장은 교육제도 개혁이 저출산 해결의 핵심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생들이 4년을 학교에서 보내고 어학연수를 가거나 취업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기 위해 추가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고등교육을 노동 수요자의 눈높이에 맞춰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 수업 외에 추가로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이 짧아져 결혼도 앞당기고 출산율도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4년제인 대학 학사일정을 영국처럼 3년이나 그보다 더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는 다소 파격적인 제안도 내놨다. 박 원장은 "대학 학사일정을 차라리 영국처럼 3년 혹은 이보다 더 줄여 직장을 잡은 후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 활성화된 온라인 공개강좌(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를 취업 후 교육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직장을 잡는 연령대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출산율이 올라가고 조기에 산업현장에 나서 생산가능인구가 떨어지는 것도 막는 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박 원장은 저출산·고령화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기존 대책을 손질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다둥이'에 초점을 맞춘 대책을 '첫째 아이'로 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출산의 원인은 둘째, 셋째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첫째조차 낳지 않으려는 현상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상반된 이민정책으로 희비가 갈린 독일과 일본의 교훈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독일과 일본은 고령화가 가장 빠른 국가였다. 하지만 지금 독일경제가 앞서 가고 일본이 정체된 이유 중 하나는 외국인 노동자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는지 여부"라고 말했다. '게르만 우월주의'로 유명한 독일이지만 이민 문호를 열어 현재는 전체 인구 중 비게르만 인종이 13%에 이른다. 반면 일본은 1.7%에 불과하다. 박 원장은 "우리는 3%대로 일본보다는 높지만 그래도 여전히 외국인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민 정책과 국민 정서의 변화를 촉구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도 이어졌다. 박 원장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고 기준금리를 내리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는 누가 와도 할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구조개혁"이라고 말했다. 그는 "4대 구조개혁을 추진하려는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진도가 안 나가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박 원장은 "내년 4월 총선까지 9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하반기부터는 국회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을 수 있고 총선이 끝나면 소위원회 등을 구성하느라 상반기가 지나가고 조금 있으면 2018년 대선 국면으로 넘어갈 것"이라며 "시간이 얼마 없다. 모두가 합심해 구조개혁에 매진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 원장은 올 하반기 국정의 최대 화두인 노동개혁에 대해 먼저 입을 열었다. 기재부 장관 직전 고용노동부 장관도 지낸 그는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노동개혁과 관련해 '대안은 없다'고 외치며 강하게 추진했다"고 소개했다. 대처 전 총리는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의 앞글자를 따서 '미세스 티나(TINA)'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한 정치 리더십을 보여줬다.
금융개혁과 관련해 개인적인 아쉬움도 털어놨다. 박 원장은 "기재부 장관으로 있을 때 산업은행 민영화 등을 단행하려 했지만 유럽 재정위기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정책금융이 과하다"며 "심지어 은행이 대출금의 정부보증률을 95%까지 높여달라는 경우도 있다. 이는 금융이라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 원장은 "금융이 과도한 정부지원의 그늘에서 위험관리 기능 등이 취약해졌다"며 "정부 영향력을 줄이면 고급인력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공공개혁은 올 상반기 공무원 연금개혁이 단행되기는 했지만 갈 길이 아직 멀다는 평가다. 박 원장은 "과거에는 정부가 간섭하고 민간이 따라오면 경제가 발전하는 모델이 유효했지만 혁신이 절실한 지금 이는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려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다"며 "정부 입김을 줄여야 민간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교육개혁은 다른 부문에 비해 크게 미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혁신을 위해서는 독일·일본처럼 누구도 대체하기 힘든 원천기술이 있어야 하고 그 근본은 교육에서 나온다"며 "잘하는 사람을 특별히 더 잘하게 가르치고 우리나라는 빈곤의 대물림이 강하므로 빈곤층에도 교육의 기회를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 원장은 현재 남북관계 및 통일 이후의 준비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통일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정작 통일 이후 미국과 중국·일본·러시아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교육·사회복지 시스템 구축 등 각론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우리의 의도와 달리 북한이 급변하는 상황에 마주치면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가다듬어 '플랜B'까지 미리 준비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사만루 몰렸던 금융위기 때와 달라 구조개혁 잘하면 이길 수 있는 게임" 야구광이 야구로 본 우리경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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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이태규기자 사진=송은석기자 대담=김정곤 경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