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신용경색 여파로 국내 원화 자금시장에도 돈이 잘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금융회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이 늦어지면서 글로벌 신용경색이 심화하자 국내 기업들의 자금조달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우량기업들은 높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주저하고 한계기업들은 고금리에도 자금조달이 막힌 상황이다. 이에 따라 자금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화 유동성 경색이 글로벌 신용경색에서 비롯된 만큼 미국 정부가 금융회사에 실제로 돈을 공급하는 연말쯤은 돼야 국내 기업들의 자금조달에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돈은 있어도 흐르지 않는다=시중의 원화 유동성은 부족하지 않다. 통화량 숫자는 정상적이다. 실제로 지난 9월25일 한국은행이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각하는 데 15조원의 유동성이 몰렸다. 한은은 이중 7조원만 팔았다.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시중에 돈은 있는데 기업으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 시중은행 투자금융담당 부행장은 "돈은 있어도 돌지 않아 '신용경색'이라는 말이 실감난다"며 "우리나라도 서로 믿고 돈을 꿔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윤여삼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한은이 시중은행에 자금을 공급하면 그 돈이 2금융권과 기업으로 흘러 넘쳐야 된다"며 "그러나 은행들이 대외적 신용불안 등을 이유로 대출을 줄이거나 회수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대출ㆍ기업어음(CP)ㆍ회사채 등을 통한 기업 자금조달 막혀=기업들은 자금조달이 힘든 상황이다. 은행 대출, CPㆍ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다. 은행들은 신규대출을 억제하고 기존 대출을 회수할 조짐이다. CPㆍ회사채 발행시장은 위축되는 추세다. 기업들의 단기자금 조달창구인 CP는 지난 8월 이후 매달 발행하는 물량이 만기도래 물량보다 적다. 상환에 필요한 최소 물량도 발행이 힘든 상황이다. 회사채도 6월 이후 급속도로 위축되면서 9월에는 4조원가량을 순상환했다. 금융채는 아직까지 발행은 가능하다. 하지만 금리가 7%대로 급등하면서 발행규모가 줄었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장은 "은행채 금리가 7%를 넘어선 후에는 조달하는 은행도 부담이지만 빌려가는 기업들도 감당하기 힘들어한다"며 "국내 원화 유동성이 묶이면서 어려운 기업들은 고금리에도 자금조달이 어려운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 유동성은 올해 말쯤에야 풀릴 듯=시장에서는 삼성전자도 회사채 발행을 검토 중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유동성은 충분하고 현금흐름에는 문제가 없지만 미리 시장 분위기를 파악하고 대비해두자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풀리는 시점을 올해 말쯤으로 내다본다. 국내 원화 유동성 경색이 글로벌 신용경색에서 파생된 만큼 해결점도 그곳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미국 신용경색으로 우리나라까지 어려움을 겪는 건 억울한 측면이 있다"며 "결국 냉각된 심리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미국 금융회사에 유동성이 공급되는 등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