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CEO칼럼] 명문 장수기업을 보고싶다


유난히 춥고 매서웠던 겨울이 서서히 지나는 듯하다. 어렵고 힘든 겨울을 견딜 수 있는 것은 따뜻한 봄이 온다는 불멸의 진리 때문일 것이다.

지난 1960~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 창업한 중소기업 1세대들은 사실 '혹한'속에서 기업을 키워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그만큼 세월도 흘러 이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안정적인 경영상황에서도 경쟁력 강화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되는 상황이라면 기업의 리스크는 최고조에 달한다. 의사결정권한이 CEO에 집중된 중소기업이라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에 따라 기업 내부는 물론 외부고객들도 예민해지는 순간이 바로 이때며 '체계적으로 후계자를 육성해야 하는 구나'하는 생각이 절실하게 드는 이유다.

원활한 가업승계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가업승계 기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창업자가 어렵게 키워놓은 회사를 후손들이 물려받아 성장시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사하다. 세계 500대 기업의 33%가 가족기업이며 미국 전체기업 중 80% 이상이 가족기업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우리 또한 전체 제조업체의 85%가 가족기업에 해당되나 선진국과 달리 가업승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히 부정적이다. 일부 대기업의 편법증여를 통한 경영권 승계가 부정적 여론을 확산시키는 데 부채질했고 이 같은 상황을 의식한 정책당국은 가업상속 관련 조세제도를 까다롭게 운영해왔다. 그러나 대기업과 달리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미처 준비할 시간조차 없이 이미 여러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중소기업계 현장목소리가 공론화된 2008년부터 세 부담 경감을 골자로 한 가업상속공제가 확대됐다.

가업승계 과정서 CEO 리스크 커져

그러나 공제한도가 제한적이며 사전ㆍ사후 요건이 복잡하고 까다로운 정책기조는 여전하다.


일찍이 세계 주요 선진국들은 세제개편 방향을 생산요소의 세 부담 완화와 동시에 자본과 노동의 유치, 생산 효율성 제고 등 가족기업의 장점 극대화를 통한 국가경쟁력 향상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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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또한 지금이라도 가업승계 기업이 더 성장해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고 국가경제의 튼튼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도록 과감한 정책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행 제도에서 중소기업들이 가업상속 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우선 업종변경이나 휴업을 해서는 안 된다. 10년 동안 계속 가업을 영위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업 간 융복합 등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를 외면하고 기존 사업만 하란 이야기다.

경영 1세대들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도 미리 계획해야 한다. 상속인이 상속개시 2년 전부터 가업에 종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26년간 금형업체를 운영했던 한 중소기업 대표는 지난해 11월 간암진단을 받고 6개월 만에 운명을 달리했다. 병역특례를 마치고 막 회사에 입사한 아들은 이 같은 제한규정에 걸려 거액의 상속세를 부담해야 할 처지로 아버지를 잃었을 때보다 더 막막한 상태다.

낮은 공제한도와 매출액 기준도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매출액 2,000억원이 넘지 않게 기준에 맞춰도 공제한도가 최대 300억원에 불과해 규모가 제법 큰 중소기업들은 수백억원대의 상속세를 내야 할 처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행 공제한도와 매출액 상한선은 가업승계를 앞둔 중소기업들에 성장 속도를 늦추라는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해 또 다른 '피터팬 증후군'기업들을 양산해낼 가능성이 크다.

상속세 부담 과감하게 덜어줘야

장수기업의 탄생은 원활한 경영승계가 이뤄지고 이에 따른 리스크를 얼마나 최소화시키느냐에 있다. 오히려 현재 30억원인 증여세 과세특례한도를 독일이나 일본처럼 가업상속공제 한도와 동일하게 확대해 사전증여를 통해 체계적으로 후계자를 육성하거나 상속세 부담을 과감하게 없애 글로벌 명문 장수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하고 기업이 성장해 법인세 등 세금을 더 내는 것이 국민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미 독일은 두 차례의 특별법 제정을 통해 가업승계 정책방향을 세금징수에서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옮겨갔다. 독일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봄바람이 우리 중소기업들에도 전해졌으면 하는 게 헛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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