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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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 명분으로 국내 대기업 입찰 제한해 놓고<br>세계 2위 면세점은 중견기업 자격 김해공항 입점<br>듀프리, 참여 규정 역이용 국내 자회사 세워 낙찰<br>"누구를 위한 정부냐" 비난


세계 2위 거대 면세점이 중견기업으로 둔갑해 김해공항 면세점에 입점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중소ㆍ중견기업으로 입찰을 제한하는 등 관세법까지 바꿔가면서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을 꾀한 정책이 오히려 외국계 대기업의 배만 불리는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되자 국내 면세점 업계에서는 “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고, 법 개정이었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2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한국공항공사 부산지역본부는 이날 김해공항 국제선 DF2(434㎡) 면세점 임대 전자입찰을 실시해 듀프리토마스줄리코리아를 운영자로 선정했다. 낙찰가는 2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전체 면세점 면적의 약 40% 가량을 차지하는 DF2은 주류와 담배 등의 면세품을 파는 곳이다. 동반 상생 정책에 따라 입찰 자격을 중소ㆍ중견기업으로 제한하기 위해 앞서 신세계가 선정된 DF1구역(화장품ㆍ향수 취급)과 분리해 입찰을 실시했다. 하지만 입찰업체가 1곳 이하이거나 입찰가격이 최저가에 미치지 못해 4차례나 입찰이 불발되던 끝에 낙찰자가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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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DF1 운영자로 지목된 듀프리토마스줄리코리아가 세계 면세점 시장의 공룡기업으로 꼽히는 듀프리의 국내 자회사라는 점이다. 듀프리토마스줄리코리아는 세계 2위 면세점 기업 듀프리가 지난 8월9일 자본금 1,000만원으로 설립한 유한회사로 우리 정부로부터 중견기업 확인서를 받아 공항공사에 제출하고 김해면세점 입찰에 참여했다. 듀프리가 중소ㆍ중견기업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규정을 역이용, 자회사 설립 등 과정을 거쳐 낙찰자에 선정되자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한다는 정부 정책이 오히려 국내외 대기업간 역차별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국내 면세점업계 한 관계자는 “듀프리토마스줄리코리아는 겉으로는 ‘동반 상생구역’ 입찰 자격을 충족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외국계 기업이 현 규정을 교묘히 악용하면서 정부 규제가 오히려 국내외 대기업간 역차별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디 리포트에 따르면 듀프리의 지난해 매출은 40억 달러로 DFS(50억 달러)에 이어 세계 2위로 국내 대표 면세점인 롯데(33억 달러ㆍ4위)와 신라(21억 달러ㆍ8위)와도 매출액 차이가 크다.

또 다른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자금력이 약한 국내 기업들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이 글로벌 거대 기업이 국내 면세점 업체들을 제치고 사업권을 따냈다”며 “터무니 없니 높은 임대료 등 김해공항과 같은 이유로 유찰되고 있는 인천공항의 관광공사 면세점 자리에도 듀프리 같은 외국계 회사가 우회 입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중소·중견기업에 면세사업 기회를 주기 위한 공간이지만 최저 입찰료가 너무 높아 도저히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라며 “자금력과 원가경쟁력이 약한 만큼 최저 입찰료를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관세청은 현재 7개인 중소ㆍ중견기업 운영 면세점을 2018년까지 15개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한 ‘면세산업을 통한 중소기업 성장 지원대책’을 이날 발표했다. 국내 면세점이 롯데ㆍ신라ㆍ신세계 등 대기업 과점체제로 운영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내놓은 이 대책에 따라 5년 내 중소ㆍ중견기업이 운영하는 면세점은 2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안현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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