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십자각] 월세살이 상상

정경부 우원하차장 해외연수차 지난 1년간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살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취재를 위해 이미 여러차례 미국을 가본 터였지만 잠시 들르는 것과 사는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생활을 통해 가장 신통방통하게 느껴진 것은 그들의 주택임대제도와 가구문제였다. 시애틀에서 방이 두개 딸린 타운하우스를 얻는데는 한달에 9백달러가 필요했다. 서울의 전세값과 전세만 고집하는 주택임대차 관행을 생각할때 단 한푼의 보증금도 없이 집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즐거웠다. IMF사태 이후 주택가격이 폭락하고 팔려고 내놓아도 안팔리는 집들이 많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정부가 이참에 발상의 전환을 통해 임대(월세)주택제도를 정착시키는 계기를 마련하면 어떨까라는 엉뚱한 공상이 떠오른다. 정부가 적당한 기관을 지정해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온 집들을 많이 사버려 이를 월세로 국민들에게 임대해준다는 것. 집을 사들이는 정부예산에 한계가 있다면 아예 정부의 한은차입을 통해 통화를 방출하면 된다. 부동산 시장이 무너져 금융시장 와해까지 닥친 상황에서 타당성의 여지는 충분하다. 그러면 부동산 가격 폭락을 막는 동시에 집을 팔아치운 사람들이 임대주택에 살면서 소비수요를 늘릴 여지가 있다. 실효성 없는데 예산을 낭비하느니 실업자의 집을 사주거나 전세를 월세로 전환시켜주면 된다. 집에 대한 국민들의 고정관념도 변화시키고 내수소비 증진을 통한 경기활성화도 꾀하는 두토끼 잡기다. 정부가 임대주택사업을 영원토록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처음부터 임대주택사업자에게 주택구입자금을 대줄수도 있고 일단 정부가 매입해 운영하다가 민영화를 해도 된다. 그래서 우리주변에 임대주택을 쉽게 구할수 있는 세상이 오면 월급장이들도 평생의 숙원이던 내집마련에 집착치 않고 월급만 가지고도 재미나게 살아갈수 있을 것이다. 또 한가지. 미국에는 장롱이 없더라는 것. 한평생 십수번씩 이사를 다니는 우리네 삶에서 장롱은 피할수 없는 멍에다. 미국사람들은 집을 지을때 방마다 아예 옷장을 만들어버린다. 그러니 이사를 갈때도 옷가지와 침대·소파만 옮기면 끝이다. 임대주택에는 냉장고 세탁기도 붙어있다. 번듯한 집에 월세로 살면서 남는 전세돈을 여유자금으로 활용하고, 이사때마다 장롱을 옮기는 수고와 비용도 덜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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