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8·31 대책'을 돌아보며

“집값 잡겠다는 정부 믿다간 평생 내 집 장만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서울 신정동에 전세를 살고 있는 주부 임모(38)씨는 지난해 8ㆍ31 부동산 종합대책 발표 때 TV 화면에 비친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떠올리면 분노가 치민다고 한다. 한 부총리는 당시 “부동산 투기는 이제 끝났다”며 굳은 표정으로 ‘집값 잡기’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임씨는 그때 이 모습을 보고 8ㆍ31 대책 발표 이후 집값이 떨어지면 내 집을 장만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졌다. 몇 차례의 청약기회도 미뤘다. 정부의 잦은 부동산대책 실패로 8ㆍ31 대책에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부 당국자들의 결연한 의지를 보고 이번 만은 다를 것으로 생각했다. 그로부터 반년이 흘렀다. 그러나 임씨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서울 강남은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대책 발표 이전보다 가격이 더 뛰어 강북과의 격차를 벌렸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소형 평형과 중대형 평형간 양극화는 심화됐다. 풍선효과도 더욱 확산돼 시장 불안은 가라앉을 기미가 안 보인다. 뉴타운과 재개발을 비롯해 행정중심복합도시ㆍ혁신도시ㆍ기업도시 등 개발에 따른 호재만 있으면 전국의 집값과 땅값은 들썩거렸다. 현재 상황만 본다면 ‘부동산 투기는 끝났다’는 정부의 공언(公言)은 공언(空言)이 될 판이다. 임씨는 상황이 이런데도 아직까지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내놓지 않고 이리저리 둘러대며 변명하기에 바쁜 정부의 모습을 보고 더욱 실망했다. 정부는 8ㆍ31 대책을 실패로 결론 내리기엔 성급하다고 주장한다. 8ㆍ31 대책은 과거와 같은 단기처방이 아니라 서민의 주거 안정과 부동산 투기 억제를 위해 장기적이고 근원적 처방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그 이유이다. 정부는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채 삼키지도 않은 명약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먹지도 않고 입에만 가져간 약의 값을 벌써 지불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대책의 효과를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성급함을 꾸짖으면서 뭐가 그리 급했는지 관련자들의 포상부터 한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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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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