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말까지만 해도 코레일에는 주물공장이 있었다. 철도차량용 주철 제륜자(制輪子ㆍ브레이크 장치의 일부)를 생산하던 공장이었다. 이곳의 근무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힘들고 고단한 일이 많은 철도 업무 중에서도 주물공장은 단연 으뜸으로 꼽혔다. 쇳물을 녹이고 붓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방열복을 입고 작업하지만 한겨울에도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주물공장은 한때 동양 최대의 설비를 자랑했다. 하지만 값도 싸고 품질도 좋은 합성 제륜자가 등장하면서 주물공장의 가동률은 급격히 감소했다. 그때부터 주물공장은 천덕꾸러기로 전락해버렸다. 해마다 무려 117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발생했으니 차라리 가만히 앉아 있게 하고 월급을 주는 편이 나을 정도였다. 하루속히 가동을 중단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다른 것 다 필요 없으니 여기에 있게만 해달라”고 마흔네명의 직원들이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노조에서도 반대가 심했다. “적자도 적자려니와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라도 더 좋은 곳으로 옮겨주겠다”는 약속 앞에서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공장 폐지와 함께 아예 쫓겨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평생 그 일만 해왔으니 다른 세상은 생각조차 하지 못할 법도 했다.
그러나 형편없는 생산성과 열악한 근무환경을 고집한다는 것은 마치 가게에서 쌀을 사오면 될 것을 절구를 구해다가 쌀을 찧겠다고 우기는 격이었다. 끈질긴 설득 끝에 결국 공장을 폐지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지금 그 직원들은 다른 업무에 대한 교육을 받은 후 더 좋은 환경에서 만족스럽게 일하고 있다.
코레일은 주물공장의 폐지 덕분에 새로운 사업을 벌이지 않고도 해마다 117억원의 이익을 얻게 됐다. 또한 철도의 여러 분야에서 유연한 인력 배치가 절실한 상황인데 이 일은 동료 직원들의 고용 불안을 해소하는 모범 사례가 됐다.
기업 경쟁력을 거론할 때면 으레 등장하는 화두가 ‘인력 운영의 유연성’이다. 이 말은 쉽게 표현하면 일손이 모자란 곳에 인력을 새로 채용하지 않는 대신 넘치는 곳의 인력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업무가 주어지는 만큼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효율적 인력 운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경쟁력이 향상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촌각을 다투며 급변하는 정보화 시대에는 ‘낡은’ 업무가 사라지고 ‘새로운’ 업무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고유 업무가 따로 없다. 사측의 고용 보장 약속과 노조의 인력 재배치 수용이 어우러져 경쟁력을 높이는 기업이 많아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