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은 한국 무역사에 큰 이정표를 세우는 해다. 수출이 3,000억달러 고지를 돌파하고 무역은 6,000억달러를 넘어서게 된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도 본격적인 분수령을 맞이하고 있다. 민간 차원에서 구심 역할을 해온 무역협회가 60주년을 맞이한 해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왜 수출이 중요하나’에 대한 대답은 과거 외환위기 체험 하나만으로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우리는 연간 8억배럴이 넘는 원유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에너지 수입에 지출하는 금액이 올 한해 85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해외여행이 갈수록 늘어 올해에는 여행수지적자만 따져도 120억달러를 넘을 전망이다. 이러한 외화의 씀씀이 측면뿐만 아니라 수출은 일자리, 소득 수준 및 생활의 질과도 직결된다. 특히 경제활동인구 다섯명 중 한명은 수출에 종사하고 있다. 수출 3,000억달러 돌파의 남다른 의미는 첫째, 지난 64년 우리 수출이 1억달러를 돌파한 지 42년 만에, 또 2,000억달러를 넘어선 지 불과 2년 만에 이를 이뤄냈다는 점이다.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들이 2,000억달러에서 3,000억달러에 이르기까지 평균 5.9년이 소요됐고 일본은 12년이 소요된 점에서 우리의 수출 신장 속도를 가늠할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 11위 수출국의 대열에 서게 됐다. 우리보다 앞선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중계무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우리 수출은 사실상 세계 9위권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우리가 60년대 세계 100위권에서 출발했을 당시 7위권이었던 아르헨티나는 현재 40위권으로 떨어졌다. 둘째는 수출의 질적 변화다. 우리나라 무역통계가 처음 나온 46년 수출은 고작 340만달러에 불과했다. 수출국은 중국과 일본 두 나라였고 수출 품목이라야 한치와 오징어 정도였다. 60년대에 들어와 가발과 합판ㆍ은행잎까지 수출 주력상품으로 등장했다. 올해 우리 수출을 이끈 품목은 반도체와 자동차ㆍ무선통신기기ㆍ조선ㆍ석유 제품 등이며 이들 5개 품목의 수출은 모두 200억달러를 웃돈다. 셋째, 수출 3,000억달러는 선진국으로 가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ㆍ일본 등 선진국이 수출 3,000억달러를 넘어설 당시 1인당 소득이 2만~3만달러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제 우리도 2만달러 소득 달성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우리 수출이 단기간에 큰 성과를 이뤄냈으나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멀고 험난하다. 업계는 우선 원화의 고공행진을 극복해야 한다. 특히 일본의 엔화에 대비해 원화는 지난해에 12% 절상된 데 이어 올해에도 11%가 절상돼 수출 채산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원유를 비롯한 국제원자재 가격의 급등과 우리 내부의 고비용 구조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중국과의 경쟁 또한 만만치 않다. 중국은 높은 구매력을 바탕으로 유럽 항공산업의 심벌이라 할 수 있는 에어버스의 조립공장을 유치했다. 미국 포드자동차는 자국 내 공장을 폐쇄하고 조립 라인은 물론 엔진 등 핵심 공정도 중국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중국은 1조달러에 이르는 수출과 1,000억달러가 넘는 무역흑자에 따라 위안화 절상 압력을 받게 되자 804개 노동집약형 가공산업에 대해 사실상 수출 중단을 선언했다. 노동력에 의존하는 임가공업 대신 첨단산업으로 수출 구조의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FTA로 대변되는 지역주의 파고도 극복해야 한다. 이미 세계 무역의 52%는 자유무역협정에 따라 교역되고 있다. 심지어 중국과 인도간의 자유무역협정이 추진되고 유럽연합(EU)과 북미간의 자유무역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인도와 브라질ㆍ남아공간의 IBSA라는 대륙간 경제 통합도 주목을 끈다. 이처럼 확산되는 지역주의는 국가간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방불케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명제는 이제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해 무역 8강, 산업 4강을 조기에 이뤄내는 것이다. 여기에는 앞서 살펴본 것 이상의 많은 난관이 산적해 있으나 정부와 기업, 또 온 국민의 힘이 모아진다면 해결책이 어렵지 않게 찾아질 것이다. 변변한 천연자원 하나 없이 맨주먹으로 수출 3,000억달러를 이뤄낸 저력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희범 한국무역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