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주식이 대안이다] 90년대 美증시와 비교해보면…

월가, 주식대중화 이끌고 산업자금화 선순환 창출<br>초등생에 '주식투자 방법' 숙제 풍부한 자금으론 벤처기업 지원<br>지수상승·펀드열풍 비슷하지만 기업투자 부진등 산업구조 판이


‘한국 주식시장은 90년대 미국 증시의 10년 대세상승 국면과 닮은 꼴(?)’ 지수 상승 추세를 비슷할 수 있지만 그 속내를 보면 다른 게 적지 않다. 90년대 월가는 주식의 대중화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주식투자 자금이 거대한 산업자금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창출했다. 현재 한국 증시 상황은 지수 상승과 적립식 펀드 열풍 등에서는 당시 미국 증시와 비슷하다. 하지만 주식투자 자금이 증시에 머물러 있고 기업투자가 부진한 현재의 한국 증시 및 산업구조는 당시 미국과 전혀 다르다. 월가는 당시 미국 기업과 금융산업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미국인들 생활의 중심에 서있다. 미국의 봉급쟁이들은 노후 생활을 위해 주식시장에 적금을 부듯 투자했고 부모들은 장난감을 사겠다는 아이에게 “스스로 대학 학비를 준비하려면 유망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초등학교 선생들은 1만 달러가 있다면 어느 회사에 투자할 것인가를 결정해 오라고 숙제를 낸다. 학생들은 월스트리트 저널과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어 투자회사를 선정한다. 학생들은 며칠 후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를 차트로 만들어 제출하는 커리큘럼이 미국 학교에서 유행했다. 정치인들도 주식 투자자들을 겨냥해 지지를 호소했다. 유권자의 대부분이 주식투자자이기 때문이다. 1997년 가을 빌 클린턴 대통령은 야당인 공화당 주도의 의회가 무역자유화를 내용으로 하는 신속처리권(패스트트랙)을 놓고 팽팽히 대립하고 있었다. 그때 클린턴은 주식투자자들을 향해 “이 법안이 통과되면 주식시장에 매우 긍정적인 충격을 줄 것”이라며 호소했다. 대통령이 의회와 마찰을 빚으면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호소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관행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대통령이 무역법안을 밀어붙이면서 유권자가 아닌 주식투자자에게 호소했던 것이다. 90년대 미국 증시가 활황국면을 이어간 데는 주식의 대중화와 함께 주식투자자금의 산업자금화라는 선순환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월가는 기업의 유아기에서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직접 금융을 통해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을 닦았다. 이제 막 태어난 유아기의 벤처 사업가들은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벤처 캐피털을 이용,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하버드 대를 중퇴한 건달(빌 게이츠)이 무일푼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월가의 풍부한 자금 덕분이었다. 소년기로 성장한 기업은 나스닥에 등록하고 장년에 이르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함으로써 더 큰 규모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다. 그러다가 성숙단계에 이르면 월가의 투자은행의 지도를 받아 인수 합병(M&A) 과정을 거쳐 새로운 기업으로 태어난다. 성장성 있는 사업 부문에는 쉽게 필요한 자금이 유입되고, 사양 산업에는 자동적으로 자금이 빠져 나오는 증시의 메커니즘이 마련된 것은 당시 월가의 ‘노력의 산물’이었다. 미국 기업들은 은행을 통한 간접금융보다 주식 및 채권을 통한 직접 금융으로 자금을 확보하는 비율이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 높다. 간접금융 비율이 높은 일본 경제와 이를 모방한 아시아 경제가 한때 위기에 처하고, 미국식 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월가를 통한 금융시스템의 우위 때문이었다. 월가는 특히 주식시장의 투기성 자본을 산업자본화하는 기술을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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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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