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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고객의 반발을 알면서도 금융회사의 수수료 인상을 손대려는 표면적 이유는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싸다는 것이다. 수수료가 낮더라도 다른 곳에서 돈을 벌면 괜찮지만 은행의 순이익이 반 토막 난 상황에서 원가 이하의 수수료는 무리라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금융회사의 이익감소 속도가 당국의 예상보다 훨씬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 올해 2ㆍ4분기 국내은행의 순이익은 1조원대 초반으로 지난해의 절반에 그친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2ㆍ4분기에는 STX그룹 등 유동성 위기 대기업에 들어간 은행의 신규 자금 지원과 그에 따른 대손충당금이 순이익에서 빠진다"면서 "1조원 초반에 머물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국은 원가 이하로 책정한 수수료나 아예 은행이 부담했던 수수료의 일부를 고객에게 넘길 계획이다. 고객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던 계좌 개설이나 소액 휴면 계좌에 수수료가 신설되고 그동안 폐지나 인하를 추진하던 대출금 중도상환 수수료, 송금 수수료는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은행이 너무 많은 순이익을 내서도 안되지만 너무 낮으면 결국 더 많은 세금인 공적자금이 들어가게 된다"면서 "은행이 주먹구구식으로 산정한 수수료의 원가를 공개해 고객도 공감하는 수수료 수준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은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논의하고 있고 수수료 부과에 관한 연구 용역을 맡겼다.
◇비용 드는 곳은 수수료 부과=은행들이 가장 먼저 지적하는 것은 계좌 개설과 중도상환 수수료다. 고객이 계좌를 창구에서 개설하면 은행 직원의 인건비와 통장 등 소모품, 전산망 유지비가 든다. 그러나 현재는 모두 은행이 부담하고 있다.
당국 관계자는 "미국 등 해외는 신용도를 엄격하게 따지기 때문에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계좌 개설과 유지에 따라 수수료를 낸다"면서 "반면 우리나라는 고객 유치에 급급한 나머지 계좌 개설에 드는 수수료가 없기 때문에 꼭 필요하지 않아도 계좌를 열어두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계좌를 개설하거나 유지하는 데 수수료를 매긴 경우는 2000년대 초반 SC제일은행이 시도한 바 있다. 당시 SC제일은행은 통장 잔액이 10만원 미만인 경우 월 2,000원의 수수료를 부과했다. 미국 등 외국 사례를 따른 것이었지만 다른 은행은 시도하지 않은데다 규정을 몰랐던 고객이 많아 잦은 분쟁을 일으켰다. 결국 2005년 계좌 관련 수수료는 폐지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창구를 이용하지 않고 인터넷뱅킹을 통해 계좌를 개설하는 고객이 많아서 당시보다 부담은 줄어들 것이라는 게 당국의 예상이다.
대출 고객이 약정 기간보다 먼저 돈을 갚을 때 내는 중도 상환 수수료는 은행 수수료 수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대출액의 1.4~1.5% 정도 떼는데 2011~2012년 6월까지 17개 시중은행은 5,177억원을 중도상환 수수료로 거뒀다. 그러나 이후 중도상환 수수료 폐지주장이 나오면서 당국도 단계적 폐지를 추진했다.
은행 관계자는 "대출 고객 중에는 싼 금리를 찾아 다른 금융기관으로 갈아타는 경우가 많다"면서 "고정금리를 유지하기 위한 헤지나 담보물을 설정하는 데 드는 고정비는 물론 새로 고객을 찾기 위해 드는 각종 영업비는 고객이 부담해야 할 몫"이라고 강조했다.
◇자구 노력 없이 가능할까=당국과 은행이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실제 수수료 인상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공적자금이나 고액 연봉을 받은 은행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일 수 있다. 자구 노력 없이 다수 고객에 손을 벌린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이에 대해 은행의 성과급 체제를 손보고 점포수를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당국 관계자는 "2012년 이후 은행의 수익성이 떨어졌는데 성과급은 인상폭이 줄었을 뿐 액수는 증가했다"면서 "은행 성과급 기준이 합리적인지 전면 조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밖에 개인의 성과가 아닌 집단 성과에 따라 성과급을 주는 경우도 사실상 인상을 위한 은행의 꼼수라는 지적이 있다.
당국은 아울러 전체 점포의 10% 정도를 적자로 보고 이를 줄여 비용절감을 유도할 계획이다. 폐쇄한 점포의 직원을 고객 유치나 상담 등 외부 용역 업무에 투입하면 명예퇴직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당국이 수수료 인상을 독려해도 은행 스스로 거부할 가능성도 높다. 섣불리 수수료를 인상했다가 고객이 대거 이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높은 금액을 받을 수 있는 PB 자문 수수료는 은행 스스로 고객 우대 차원에서 받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총대를 메고 은행 전체가 강제로 받게 한다면 모를까 은행 기여도가 높으므로 받지 못한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