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회복세 주춤 국세수입ㆍ성장률 달성 의문SOC등 증가폭작아 성장 잠재력 저해 우려
내년 예산안의 특징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외환위기후 6년만에 처음으로 균형재정을 목표로 삼았다는 점과 예산증가율이 예년보다 크게 낮아졌다는 점이다. 어려운 재정여건에서도 약속한 균형재정 달성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때문에 이번 예산안은 최악의 조건에서 뽑아낸 차선의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재원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살림살이를 짜다보니 일부 예산의 증가액이 기대보다 훨씬 못미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번 예산안을 `긴축 예산`으로 간주하며 잠재성장률이 떨어질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재원을 끌어모아 경기를 부양하려했던 지난해 예산안과는 대조적이다.
정부는 성장을 지속하면서도 균형재정 달성에 중점을 뒀다고 강조하지만 자칫 두가지 정책목표를 다 이룰지는 두고볼 일이다. 균형재정 목표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이 때문에 나오고 있다.
◇악화된 재정여건, 천수답 구조
전년대비 일반회계 증가율 1.9%는 내년 예산이 어느 해보다 빠듯하게 편성됐다는 의미다. 재정여건이 그만큼 나빠진 탓이다. 태풍 피해로 사상최대 규모의 재해극복용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데다 ▲공적자금 원리금 상환을 위한 일반회계에서의 2조원 출연 ▲공기업 주식 매각물량 소진에 따른 세외수입 격감 등이 예산을 압박하고 있다.
특히 태풍 피해는 정부의 당초 목표인 일반회계예산 113조원을 111조7,000억으로 축소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더욱이 내년에 쓸 수 있는 가용자원을 올해 추경으로 미리 쓰는 통에 올해와 같은 자연재해가 재발할 경우 꼼짝없이 일반회계 적자보전용 국채를 발행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천수답 재정이라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은 꼴이다.
◇6년만의 균형재정 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적자 국채발행을 중단한다는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제2의 위기에 대해 국민경제의 최후의 보루인 재정이 대응여력을 비축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정부는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9조7,000억원을 시작으로 99년 10조4,000억원, 2000년 3조6,000억원, 작년 2조4,000억원, 올해 1조9,000억원의 국채를 발행해 일반회계의 적자를 충당해왔다.
예산 뿐만 아니라 연ㆍ기금 등 재정의 각 부문을 총괄한 통합재정수지 역시 98년 국내총생산(GDP)대비 4.2% 적자에서 올해 1.0% 흑자로 돌아선 데 이어 내년에는 흑자규모가 3% 수준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을 제외한 통합재정수지도 올해 소폭 적자에서 내년 0.9%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외환위기로 흐트러졌던 재정은 기반 위에 올라서게 된다.
◇그러나 균형재정 쉽지 않을 듯
문제는 정책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 일반회계 예산의 경직성 경비만 59%에 달한다. 올해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내년에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없어진다. 정부가 예산을 짜면서 가정한 예상 국세 수입과 경제성장률이 과연 달성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정부는 경상성장률(성장률+물가상승률)을 8~9%로 보고 국세수입은 113조8,000억원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경기회복세가 주춤거려 회기적인 세수증대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데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 등 외생변수가 발생할 경우 나라 살림살이의 균형은 단박에 위협받는 형국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굳이 균형재정에 집착할 게 아니라 대내외 변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며 "그렇지 않아도 앞당긴 균형재정 목표를 맞추기 위해 자칫 잠재성장 에너지를 까먹는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긴축이냐, 아니냐
예산규모 증가가 예상보다 훨씬 적어지자 예산의 성격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 관계자는 "일반회계 증가율이 1.9%라는 점은 사실상 긴축에 해당된다"며 "경기부양을 위해 확대편성에 초점을 맞췄던 지난해와는 정반대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절대규모는 늘겠지만 사회간접자본(SOC)와 연구개발투자(R&D) 등이 당초 예상보다 증가폭이 못미치는 데다 기업 등 민간부문의 투자가 부진한 상황에서 정부부문까지 허리띠를 졸라매고 나선다면 성장잠재력이 저해될 수 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획예산처도 일반회계 예산증가율 1.9%는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긴축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중립`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정해방 예산총괄국장은 "추경을 제외한 본예산 대비로는 5.5% 증가율이 유지되고 최근 확정된 재해대책 관련예산 9조4,000억원이 올 4ㆍ4분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풀린다는 점에서 예산편성은 긴축기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권홍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