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소비자주권과 유통혁신

"내가 직접 하지 않으면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는 회사가 돼버렸다." 일본 유통업계의 제왕 나카우치 이사오 다이에 전 회장이 지난 99년 퇴임하면서 내뱉은 자성의 소리이자 시장에서의 패배를 선언한 말이다. 그로부터 3년여가 지난 올해 초 일본 유통업계의 공룡 다이에는 파산을 선언했다. 다이에의 몰락은 나카우치 전 회장의 퇴임으로 이미 예고된 일이지만 쓸쓸히 시장에서 퇴출당하면서 지구촌경제의 빅뉴스를 차지했다. 일본경제의 고속성장과 궤를 같이하며 한때 연간매출액 5조엔을 기록, 일본 유통업계의 최대기업으로 우뚝 섰던 다이에의 몰락에서 적자생존경쟁에서 뒤처진 거대 공룡의 최후를 목격하는 것 같아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일본 유통업계의 대표주자 다이에는 곧 나카우치 회장으로 통할 만큼 나카우치 회장은 일본 유통업계의 신화적인 존재였다. 그의 경영철학은 '싼 물건을 대량으로 내놓으면 무조건 팔린다. 크고 넓은 내 건물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공급자가 주도하던 시대의 경영논리였다. 그의 공급자 우위의 논리는 헤이세이(平成) 불황 10년 만에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이는 곧 다이에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다이에는 일본판 부동산신화에 결국 스스로 함몰됐다. 부동산가격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속설에 스스로 목을 매다 결국 부동산 버블의 덫에 결린 것이다. 또한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욕구를 외면한 채 진열대에 물건을 갖다 놓으면 팔릴 것이라는 구시대적인 미몽에서 결국 깨어나지 못한 채 할인점ㆍ편의점 등 신유통산업의 공략에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 반면 일본판 유통업계의 황태자 세븐일레븐 재팬은 승승장구하며 최고의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토요카도 계열의 세븐일레븐 재팬은 기존의 일본 유통업체와는 정반대의 경영전략을 채택하면서 헤이세이 불황의 최대 수혜주로 부상했다. 세븐일레븐의 전략은 일본 유통전문가들이 평가하듯이 가히 혁명적인 발상에서 출발했다. 말하자면 유통혁신을 주도한 것이다.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는 새로운 시장개척, 소비자들의 니즈라면 무엇이든 바꾸는 기업혁신, 여기에다 투자자금을 주식시장 등 직접금융시장에서 융통하는 오너의 소유개념 파괴 등등이 결합돼 세븐일레븐은 일본 유통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우리 유통업계도 몇년 내에 고도성장단계에서 성숙단계로 접어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내 유통업계가 적자생존의 단계에 접어든 셈이다.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 유통혁신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게 된 시대라는 말이다. 특히 IMF 이후 TV홈쇼핑ㆍ할인점ㆍ편의점ㆍ네트워크 판매(다단계판매) 등 신유통업태들이 점차 시장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구유통업태를 대표하는 백화점은 독과점체제로 바뀌고 있다. IMF 이후 쓰러진 유통기업들에 대한 정리가 한창인 요즈음 한국 유통업계를 주도해온 기업들간 경쟁과 변신이 급박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유통업체의 현 주소가 여전히 다이에 수준에 머물고 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매장을 만들기 위한 부동산 매입에 열을 올리고 소비자 서비스보다는 매출에 더욱 신경을 쓰는 게 우리 유통업체의 현 주소라는 말이다. 소비자들의 입맛은 까다롭고 그들의 눈은 냉혹하다. 이 같은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끝없이 내부혁신을 추구해야 하는 게 우리 유통업계의 최대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비자주권시대의 유통업계에 던져진 화두는 자기혁신일 것이다. 조희제<생활산업부장>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