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10월 21일] IMF를 기억하며

전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어 놓고 있는 미국발 신용위기가 또다시 우리에게 십여년 전에 일어났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의 악몽을 던져주고 있다. 증권과 펀드에 투자한 투자자는 반토막이 난 원금을 보면서 환매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으며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서민은 높아진 금리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도 그리 밝지는 않다. 먹거리 안전에 대한 불안감, 평소 부러움의 대상이던 연예인의 자살, 입시 전쟁과 사교육비, 살인적인 취업 경쟁, 직불금 파동 등 어둡고 우울한 소식이 우리에게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두려움을 넘어 허탈감을 호소하는 모습이 우리들 사이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허탈한 심정은 희망이나 신뢰를 잃어갈수록 커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서서히 놓아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더구나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의 금융위기는 다음 세 가지 점에서 과거 IMF 외환위기보다 더 심각하다. 첫째, 이번 신용위기는 여러 나라에 걸쳐 더 넓은 범위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전지구적 문제라는 것이다. 이번 위기는 미국이나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가 함께 겪고 있으며 해결책도 체계적이고 국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의 부실화를 방지하고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 정부가 취한 일련의 정책을 전세계가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어느 한 국가가 노력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과거 위기보다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미국의 신용경색에서 촉발된 금융위기가 전세계 실물경제의 침체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 기업은 시장 개혁과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IMF 경제위기를 넘길 수 있었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상실은 장기간에 걸친 경제침체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일부에서는 자산 가격이 폭락하고 경제가 침체하는 디플레이션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역사는 즉각적인 정부 정책이 신속한 위기극복을 가져온다는 교훈을 준다. 지난 1990년 스웨덴의 은행위기에 정부는 즉각 구제금융을 제공했고 경기회복도 빨랐다. 반면에 악성부채를 신속히 처리하는 데 실패한 일본은 10년에 걸친 경제침체를 겪어야 했으며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셋째, IMF 외환위기 당시에 우리는 서로를 탓하는 냉소적인 태도보다는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공동 의지가 강하게 표출됐고 덕분에 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다. 우리는 총체적으로 국난 극복을 위해 합심했던 소중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금융시장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곳에 허위와 불신이 자리잡아가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계속적으로 정부의 시의적절한 금융안정 대책과 한국은행의 적극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하다. 또 한 국가가 노력한다고 해서 국제 금융시스템이 처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국제적인 공조와 해결책 마련에도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공포와 불신으로 가득한 사람들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는 것이 금융시장의 기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모든 구성원이 불안과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미래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심어줘야만 한다. 상호 간의 신뢰는 금융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고통 속에서 다 함께 극복했던 IMF는 두려움이 아니라 교훈으로 기억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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