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직하고 통일외교안보 분야를 총괄하면서 관련 부처의 유기적 협력과 조율을 책임진다. 또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회문화팀장으로서 중심을 잡고 관련 부처의 정책 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와 관련,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7월31일 외교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정 장관에게 “통일외교안보 분야를 책임지고 이끌어달라고 당부하면서 NSC 사무처에 정 장관이 위임업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라”고 지시했다고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이 13일 전했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이 10일 일상적 국정운영의 책임을 이해찬 국무총리에게 맡긴 참여정부 2기 분권형 국정운영 구도가 구체적으로 가시화됐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내각은 앞으로 이 총리가 일상업무를 총괄하는 가운데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안병영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오명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 정동영 장관, 김근태 장관이 각각 경제부처ㆍ교육부처ㆍ과학기술부처ㆍ외교안보부처ㆍ사회문화부처의 팀장을 맡는 팀제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을 끄는 대목은 이 총리와 정 장관, 김 장관의 ‘3각 구도’이다. 유력 대권주자들 사이에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면서 관리하는 ‘정치적 관리자’로서의 대통령의 구상이 밑에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를 비롯,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대선주자들의 본격적인 대선행보를 겨냥한 측면도 없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야권의 대선 후보들이 일찌감치 국민 앞에 노출돼 인기경쟁을 벌이고 있는 판이라 여권의 대권 후보들 역시 실무를 통해 단련시키고 대중 앞에 적극적으로 노출시킬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통일부 장관을 통일부총리로 격상시키는 직제개편 문제는 아직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 장관은 이번 조치로 외교안보 분야 팀장으로서의 명실상부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아 사실상 통일부총리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 장관은 남북문제와 한미관계를 비롯해 외교통상부 개혁, 국방부 문민화와 자주국방, 군 개혁 등의 과제에 두루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힘이 실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반면 김 장관의 경우 사회문화 분야의 수장을 맡는다는 큰 방향은 섰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정리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김 장관측 일각에서 다소 반발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어쨌든 이번 국정운영의 틀 변화가 법적 뒷받침이 없이 이뤄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김 대변인은 “일단 법적인 근거는 지금 따로 검토하고 있는 바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부총리직을 맡지 않은 정 장관과 김 장관이 각 팀을 실효성 있게 이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히 민감한 현안에 대해 부처간 갈등을 초래, 국정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이 여권의 대권주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법적인 근거도 없이 국정운영의 틀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느냐는 야권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